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갈 바를 모르고 휘청거리고 있다.
잇단 측근들의 구속으로 사실상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소환 조사가 조만간 이뤄질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최대 의석을 확보한 야당이 현안정책이나 민생과 관련해 제대로 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다.
연일 정부·여당과 검찰을 비난하기에만 몰두하고 있으니 지켜보기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현재 당명을 쓰며 지난 2015년 출범한 더불어민주당은 투쟁과 극복으로 점철된 한국 정당사의 핵심 정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역사성을 강조하며 이승만 정권 때인 1955년 창당된 ‘민주당’이 뿌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질적 기원은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반대한 이기택, 노무현 등이 만든 ‘민주당’과 김대중의 신민당이 합당해 1991년 9월 16일 창당된 ‘민주당’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중도개혁 성향의 정당으로 평가된다.
지지기반 또한 중도, 개혁, 진보 등 다양하다.
‘강령·정강 정책’ 역시 ‘우리는 중산층과 서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가 있는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하여 정의, 안전, 통합, 번영, 평화를 우리의 시대적 가치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에 포함된 ‘민주’라는 단어는 60년이 넘는 역사가 담겨 있다. 이승만 정권 때인 1955년 집권당인 자유당이 대통령 중임 제한 철폐를 뼈대로 한 헌법개정안을 이른바 ‘사사오입’ 논리로 불법 처리하면서 범야권이 결집했다.
이때 민국당을 중심으로 자유당 탈당 인사들과 무소속 의원들이 모여 같은 해 9월 18일 ‘민주당’을 창당했다.
그동안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슬 퍼런 독재 정권하에서 몸을 아끼지 않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쉽사리 민주당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정치인들로서는 당시 당 대표를 역임한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을 필두로 박순천, 유진오, 유진산, 김홍일, 김영삼, 이철승 그리고 김대중 등이 있다.
이후 1985년 1월 18일 전두환 독재 정권에 항거해 ‘신한민주당’을 창당한 이민우, 박영숙 그리고 1991년 4월 야권재편 때의 이기택, 이철, 노무현, 김정길, 박찬종 등도 빼놓을 수 없다.
또 2000년 1월 20일 김대중이 재야 세력 일부와 합쳐 새정치국민회의를 확대 개편할 때는 서영훈, 김중권, 한광옥, 한화갑, 정대철, 박상천, 조순형, 장상, 손학규, 김근태 등이 대중적인 정치인으로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대여 투쟁에 있어서도 몸을 사리지 않았지만 당 내부의 불합리한 정치력 행사에도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로 인해 결별과 통합 등 이합집산의 부침을 거듭하기도 하고 때로 일신의 안위를 위한 보신 정치로 비난을 사기도 했으나 오랜 독재 정권을 타파하고 민주화를 이룬 공적만큼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작금의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은 어떠한가.
실로 암담하기 짝이 없는 지경이다.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당의 정체성은 간 곳 없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다.
당 대표와 극성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이도 찾아볼 수가 없다.
민주당 역사를 살펴볼 때 역대 어느 대표도 자신의 비리 혐의로 이처럼 전방위적인 검찰 수사 압박을 받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리스크가 거론되던 이를 대선후보로 내세웠고 그것도 모자라 당 대표로 선출했다.
그 잘못된 선택이 급기야 대선 패배에 이어 현재의 혼란 상태라는 결과를 낳는 등 자신들을 스스로 옥죄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당 대표의 리더십은 보이질 않고 차기 총선 공천권 행사에 대한 의원 각각의 눈치 보기 경쟁만 난무할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실이라면 이 또한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해서인가 국정감사장에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헛발질이 이어지더니 얼마 전엔 사실 확인 없이 대통령의 심야 술자리까지 거론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있다.
개인 간의 치정에 얽힌 허위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 밝혀졌지만 득달같이 달려들어 대통령 탄핵까지 운운하던 의원들과 황교익 등 야권 인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사과나 해명조차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게다가 국정농단, 탄핵 등을 거론하며 비판에 열을 올리던 황교익은 자신은 사과조차 하지 않으면서 누구인지도 모를 불분명한 주체를 향해 사과하라는 코미디를 보여주는 등 몰염치한 행태마저 연출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외 순방길에 동행한 영부인의 일정과 사진을 두고 ‘빈곤 포르노’와 ‘조명 논란’으로 되려 역풍을 자초하고 있다.
이런 짓이나 하라고 지역구민들이 국회의원으로 선출한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입법 활동은 고사하고 지역구민들의 민생을 살피는 일조차 등한시하면서 그저 영부인의 외모를 헐뜯거나 스토킹하는 데 전력을 쏟으니 어느 국민이 이를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실력이 없거나 깜냥이 안되면 그저 다소곳이 입을 닫고 있는 게 당에 도움이 될 터인데 공천이 눈앞에 아른거리니 이마저도 자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각설하고 이미 고인이 된 분들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민주화 인사들은 적어도 이처럼 치졸한 행태는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당이 제멋대로 굴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음도 자명한 일이다.
이들은 탄압과 핍박 속에서 서로 이견이 있어도 합심해 끝내 민주화라는 커다란 업적을 일궈냈고, 거기에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야당으로선 처음으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들은 당당하면서도 떳떳한 정치를 할 줄 알았다.
명예를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았고 자신에게 허물이 있으면 깔끔하게 정계를 떠나는 결연함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에는 이 같은 인물도 없거니와 오직 당 대표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밖에 없는 듯하다.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목전에 닥쳐도 이를 지적하는 이 하나 없고 오히려 그를 지키기에 당력을 소모하고 있을 뿐이다.
누구 하나 바른 소리를 내질 않는다.
당내 4선의 중진의원이 뇌물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할 때는 대변인의 짤막한 논평뿐이었지만, 소위 당 대표 측근이라는 김용과 정진상의 구속 및 소환조사에는 당 전체가 나서 바람막이 역할을 자처했다.
과거 민주당이 그토록 목메어 외쳤던 민주와 정의, 공정과 상식은 이제 뒷전으로 사라져 버린 듯하고 남은 건 오로지 당 대표와 그 측근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누구든지 잘못이 있다면 거기에 맞게 책임지고 마땅한 벌을 받으면 된다. 이재명 대표가 예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얘기했듯이 말이다.
조사도 하기 전에 당의 모든 사람이 나서서 죄가 없다고 떠벌릴 일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조사도 하지 않고 어찌 죄의 유무나 진위를 가릴 수가 있겠는가.
민생 또한 입으로만 떠들 게 아니라 여야가 타협하고 양보하며 협력해 실천에 옮겨야만 헛구호에 그치질 않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민주당을 제대로 계승하려면 지금의 행태를 고집해선 답이 없다.
각고의 노력 없이 어찌 환골탈태의 변화를 기대할 수가 있을까.
만약 빠른 쇄신과 개혁 없이 여전히 구태의연한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그나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지지자들은 물론 국민 또한 외면하게 될 것이고, 그리되면 민주당의 몰락은 불 보듯 명약관화할 것이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