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이 있다.
임금과 스승, 그리고 아버지는 한 몸과 같다는 뜻이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의 어원은 춘추전국시대 역사서인 국어(國語)에 나오는데 간략히 원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民生於三 事之如一(민생어삼 사지여일, 사람은 세 명으로부터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니 섬기기를 동일하게 하라)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부생지 사교지 군식지, 부모는 낳아주시고 스승은 가르쳐주시고 임금은 먹여주시니)
非父不生 非食不長 非敎不知 生之族也(비부불생 비식부장 비교부지 생지족야, 부모가 아니면 생기지 못했을 것이며 먹지 않으면 자라지 못했을 것이며 가르침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니 낳아주심과 한가지이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정확히 ‘군사부일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은 유명한 오언절구를 모아놓은 시집인 추구(推句)에서다.
天地人三才(천지인삼재, 하늘 땅 사람은 삼재이며)
君師父一體(군사부일체, 임금 스승 부모는 한 몸이네)
天地爲父母(천지위부모, 하늘과 땅은 부모가 되고)
日月似兄弟(일월사형제, 해와 달은 마치 형제 같네)
역시 임금, 스승, 부모가 한 몸임을 강조했으며 이는 곧 하나처럼 섬겨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말의 주체는 스승이라는 것이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승을 존경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스승의 존재는 귀하고, 그만큼 스승의 가르침 또한 소중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접어들며 스승의 존재나 가치는 예전만 못하다.
학생 인권에 지나치게 치중하다 보니 스승에 대한 존경은 도외시되고, 반면 학생에 대한 처우가 조금만 잘못돼도 모든 탓은 스승에게로 향하게 된다.
이 때문에 점차 스승을 경시하는 풍조가 확산하고 학생들과 부모들이 스승을 폭행하는 사태까지 심심찮게 보도되곤 한다.
왜 이렇게까지 교권이 추락하게 되었을까.
이는 여러 가지 사회환경적 요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부 교사들의 처신이 빚어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근 울산의 모 고등학교 교사의 발언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보도에 따르면 울산시에 소재한 모 고등학교 교사가 수업 중 정치 편향적인 발언을 했다는 민원이 접수돼 교육청이 조사에 나섰다.
지난 18일 울산교육청 등에 따르면 최근 울산시 북구의 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가 수업 중 특정 정치 성향을 주입하는 것 같다는 민원이 시민신문고위원회를 통해 접수됐다.
민원 내용을 살펴보면 해당 교사는 수업 중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고 자본주의에 머무르지 말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말에 일해도 봉급을 받지 않는 제도를 만들려고 하는데, 왜 윤석열 정부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높은지 이해할 수 없다” 등 현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또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책임”, “독립운동가 중 사회주의자가 많았다”라는 등의 발언도 했다고 알려졌다.
이 같은 발언이 다수 학급에서 반복되면서, 학생들은 해당 교사의 수업이 불편하고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해당 교사가 지도하는 방과 후 동아리 활동에서 학생들과 저자와의 만남 중 저자가 특정 종교를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했음에도 특별한 조치 없이 방조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해당 교사는 교육청 조사에서 일부 발언은 인정했으나, 수업의 문맥상 필요한 이야기를 한 것이고 정치적인 취지는 아니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교사의 수업 중 발언도 그렇지만, ‘필요한 이야기를 한 것’이라는 그의 해명이 상당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그동안 흘린 애국선열들의 피가 아직도 이 땅에 선연한데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이 ‘필요한 얘기’라니 어이가 없다.
그것도 사석에서의 사담이 아니라 주입식 교육체제의 현실 속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였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흔히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일컫는다.
이 말처럼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잘 표현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후대를 책임지고 미래를 창조하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해서 남을 가르친다는 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가장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스승은 자신의 작은 교훈 하나로 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교육에 임해야 한다.
만약 자신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누군가가 옳지 못한 뭔가를 배운다면 그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청출어람이라는 말도 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을 때 쓰는 말이다.
올바른 스승은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을 때 진정 기뻐하며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반면 자신에게 배운 사람을 본인의 담장 안에 가두고 그 이상 높이 날지 못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잘못된 가르침을 주입하려 드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스승이다.
자신의 가르침을 얻은 제자가 가르침을 응용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아 성과를 이뤘을 때 함께 기뻐하고 칭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이야말로 참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스승으로서의 품격을 잃어버린 이를 누가 존경하고 따를 수 있겠는가.
가르침에 임하는 제자들이 불편해하고 민원을 넣을 정도면 이미 스승으로서 자격을 잃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마땅할 터인데 도리어 ‘필요한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본인을 변호했다니 참담하기까지 하다.
최근 정부가 노동계에 만연한 악습을 타파하는 개혁에 나섰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민생에 직간접적으로 악영향을 끼쳐 온 노동 개혁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 못잖게 교육계에 자리 잡은 구습도 타파해야 할 때이다. 오히려 더 시급한 현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잘못된 가르침이 개인의 인생을 망치기도 하지만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것임을 명심해 서둘러 교육 개혁에 나서야 한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