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보수주의자
공자가 꿈꾸었던 정치는 천자 중심의 종법 정치였습니다. 천자를 중심으로 제후, 대부로 이어지는 질서 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라는 것입니다. 종손이 중심이 되어 여러 자손이 각자 분수에 맞게 움직이는 집안이 가장 이상적인 가정이듯이 세상은 각자의 역할 체계가 흔들리지 않고 구동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살던 시대는 이미 종법 정치는 무너지고, 힘 있는 자가 권력을 독점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후가 패자가 되어 천자의 역할을 대신하고, 힘 있는 대부들이 제후의 자리를 넘보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공자의 관점에서 보면 체계가 흔들리고 질서가 무너지는 난세였습니다. 제후의 재정이 열악해져서 신하들의 월급이 힘 있는 권력자의 주머니에서 나오고, 정치의 헤게모니는 대부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질서체계를 공자는 한탄했지만, 세상은 이미 새로운 권력 재편이라는 소용돌이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시대 변화를 막으려고 했던 공자, 그를 구시대 권력을 옹호하는 지식인이라고 칭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공자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였습니다. 권력의 중심에 백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논어강독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