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회의원의 부인 김혜경 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지지자들 사이에 ‘거짓말’ 논란이 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경찰 소환 조사에서 김씨는 경기도 공무원 배 모 씨의 법인카드 사용을 몰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의원도 SNS를 통해 부인의 혐의에 대해 열심히 해명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 특히 여당 측과 보수 평론가들은 일제히 거짓말이라고 들고 일어났다. 반면 야당과 진보 평론가, 지지자들은 별거 아닌 일에 경찰과 검찰이 침소봉대 중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는 추후 수사 결과를 통해 밝혀질 일이지만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사건임엔 틀림없다.
장기간에 걸쳐 현직 공무원이 자택으로 각종 음식을 배달했는데 이를 그 공무원의 사비로 쓴 줄 알았다는 것이 김 씨 측 해명이다.
여당에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거짓 해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부인들과의 식사 모임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의혹이 일고 있다.
이재명 의원 측이 김 씨가 국회의원 부인들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경기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이와 다른 정황이 담긴 녹취가 공개됐다는 언론 보도 때문이다.
공자의 역사서 춘추를 노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해석한 책 좌씨전(左氏傳)에 노나라 애공과 관련한 '식언이비(食言而肥)'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애공의 총신 곽중(郭重)에게 신하인 계강자(季康子)와 맹무백(孟武伯)이 모욕을 주기 위한 상황에서 나온 고사에서 유래됐다.
'말을 많이 먹어서 살이 찐다.'라는 뜻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 시대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월(越)나라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신하인 계강자와 맹무백이 애공의 수고를 위로해주고자 조촐한 연회를 베풀었다.
술자리에서 맹무백이 애공의 어자(御者, 시종)인 곽중(郭重)을 향해 놀림 삼아 "공은 어떻게 이리 살이 쪘소?" 하자 애공이 이때라는 듯 "말을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것 아니겠소" 하고 빗대어 맞받아쳤다.
계, 맹 두 사람은 평소 애공을 욕하고 험담하길 좋아했다. 이를 곽중으로부터 전해 듣고 진작부터 괘씸하게 생각하고 있던 애공이 두 사람을 에둘러 질책한 것이었다.
계강자와 맹무백은 애공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왕에 대한 험담을 자주 했는데 이 사실을 애공도 알고 있었으니 기분 좋은 술자리가 될 리는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자 맹무백이 곽중을 거론하며 농담을 건넨 것인데, 애공이 “당신들이 평소 하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먹었으니 어찌 살이 찌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신랄하게 받아친 것이다.
이후 쓸데없는 말이나 거짓말을 두고 식언이라고 이르게 됐다.
거짓말은 대개 곤란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무리 교묘한 거짓말이라도 언젠가는 들통나기 마련이다.
또 당장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해도 이전에 했던 거짓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대부분 계속해서 더 큰 거짓말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영국의 한 작은 술집에서는 주류 제조사인 제닝스의 후원으로 해마다 세계 거짓말 대회를 여는데 특이한 규칙 하나가 세인들의 시선을 끈다.
직업상 항상 거짓말을 해야 하는 변호사, 국회의원, 외교관은 참가할 수 없고 나머지 직업은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고 하니 재미있는 규칙일뿐더러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정에서 고의로 거짓 진술할 경우 위증죄라는 중범죄가 성립한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미국 법정에서는 위증죄를 엄청난 범죄로 치부하고 있다.
거짓말로 인해 피고와 원고의 자리가 뒤바뀌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는 현직 대통령도 예외가 없는데, 대표적으로 리처드 닉슨과 빌 클린턴의 사례가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리처드 닉슨의 정치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도 도청 사실 자체보다는 닉슨의 거짓 진술이 결정타였다.
또 클린턴의 성적 스캔들이 탄핵 문제로까지 떠오른 것도 클린턴이 위증을 했다는 논란 때문이었다.
동, 서양을 막론하고 거짓말과 관련된 교훈적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동양에도 서양의 이솝우화에 나오는 늑대소년의 거짓말 이야기와 유사한 역사 속 거짓말 이야기가 있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은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위태롭게 할 만큼 아름다운 여인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경국지색에 포함되는 거짓말 일화가 있다.
중국 서주(西周) 시대 마지막 왕, 유왕은 절세미인 포사를 총애했다.
포사가 아들을 낳자 정실부인인 황후 신후와 태자 희의구를 폐위하고 포사를 황후로, 그녀의 아들 희백복을 태자로 삼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포사에게는 평소 웃음이 없었는데 그녀의 미소를 보기 위해 유왕은
비단 찢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는 그녀의 말에 매일 비단 백 필을 가져다 찢게 했다.
매일 산더미 같은 비단이 찢겨 나갔지만, 비단 찢는 소리도 이내 싫증이 나버렸는지, 언제부터인가 포사는 또 전혀 웃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실수로 봉화대에 봉화가 피워 올랐는데, 제후들이 병사를 이끌고 급하게 서주의 수도 호경으로 달려왔다.
그런데 위기에 처한 줄 알고 나라를 구하고자 죽을힘을 다해 달려오는 병사들의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이를 지켜본 포사가 깔깔거리며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왕은 이후 포사의 웃는 얼굴을 보기 위해 툭하면 봉화를 피웠다.
그리고 봉화가 올라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출진해야 했던 제후들은 점차 유왕을 불신하게 되었다.
기원전 771년, 폐위된 태자 희의구의 외조부이자 쫓겨난 황후 신후의 아버지가 손자와 딸의 처지에 분노하여 견융의 군대를 끌어들여 호경을 공격했다.
유왕은 호경성이 포위되자 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이미 포사의 웃음 놀음에 진력이 난 제후들은 이번에도 거짓이라 생각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유왕과 희백복은 견융족에게 죽임을 당했고 포사는 포로로 잡혀가 이후 생사에 대해선 전해지는 기록이 없다.
현대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거짓말에도 색깔을 넣어 여러 가지로 분류하는 등 재미를 더하고 있다.
하얀 거짓말은 남을 배려하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을 뜻하며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이다.
까만 거짓말은 자신의 죄를 덜거나 은폐하기 위한 거짓말로 범죄자들의 위증을 까만 거짓말이라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은 한국에서 주로 쓰이는 말로 진실이 전혀 없는 완벽한 거짓말, 빨간 거짓말은 상대가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하는 뻔한 거짓말, 노란 거짓말은 아이들이 하는 귀여운 거짓말을 이른다.
또 분홍 거짓말은 연인 사이에 하는 거짓말, 무지개 거짓말은 이야기를 재밌게 꾸미기 위한 거짓말로 소설이나 영화 등 창작물을 만드는 작가들의 픽션이 이에 해당한다.
이 밖에 파란 거짓말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하는 거짓말을 말한다.
각설하고, 김 씨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 어느 쪽이든 일방은 거짓말을 하는 게 자명하지만, 아직은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다만 누구라 할 것 없이 수사 이후 최종심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 결과를 미리 예단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대로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지만 결국 들통나게 돼 있다.
정치권이 이를 빌미로 사건을 정치에 이용해서도 안된다.
지지자들의 결집이나 상대 흠집 내기 등 정치 전략의 도구로 삼아서는 결코 국민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국민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면, 여든 야든 민생에 보다 전력을 기울이고 차분하게 수사를 지켜보는 게 최선의 전략일 것이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