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의 총아 벼루는 문방사우 가운데서도 가장 매력적인 품목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여러 다양한 색깔의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벼루는 붓, 먹, 종이와 함께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나라들에서 문방사우(文房四友) 내지는 문방사보(文房四寶)로 불리며 문인사대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무인들이 검(劍)을 사랑하고 아끼듯 문인들은 벼루를 무척이나 귀중히 여기고 아꼈다. 자고로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문인들 중에는 벼루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애착으로 “연치(硯痴)”로 불리어지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연치’란 ‘벼루에 미친 바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완물상지(玩物喪志)라고 하였듯이 연벽(硯癖)도 병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이렇게 ‘벼루에 미쳐버린 사람’으로 지칭되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벼루가 금은보화와 같은 세속적인 재물이 아니라 격이 높은 문방구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방구에 대한 애착과 욕심은 유가적인 청렴함과 담백함을 추구하던 동양의 선비문인들에게도 큰 흉이 아니었다.
문인들의 벼루에 대한 예찬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 그 가운데 중국 북송(北宋) 초기의 문인 소이간(蘇易簡, 958-997)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는 북송의 문인사대부로 『문방사보(文房四譜)』란 책으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이른바 문방사보(文房四寶)로 칭해지는 필(筆), 연(硯), 지(紙), 묵(墨)을 최초로 한데 묶어 차례대로 자세히 언급한 서적에 해당한다. 문방사보란 말이 이 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송대 초기에 이미 붓, 벼루, 종이, 먹을 하나로 보아 문방사보로 통칭하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하길, “네 가지 보배 가운데 벼루가 으뜸이다. 붓과 먹과 종이는 모두가 세월과 함께 없어지지만 오직 벼루만이 평생을 함께 할 수가 있다.(四寶硯爲首,筆墨兼紙皆可隨時收索,可與終身俱者,惟硯而已.)”라고 하였다. 주로 돌로 만들어진 벼루의 특성으로 보면 이 말은 매우 수긍이 가는 말이다.
또 비슷한 시대인 북송의 시인 당경(唐庚, 1070-1120)이 지은 『고연명서(古硯銘序)』에서도 벼루의 덕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찬하였다.
“벼루는 붓과 먹 등과 함께 그 출처는 서로 가까우나 오직 수명에 있어서는 서로 가깝지가 않다. 붓의 수명은 날로 계산하고, 먹의 생명은 달로 계산되지만, 벼루의 수명은 세대(世代)로 계산된다. 그 몸체를 두고 말하자면, 붓은 가장 날카롭고 먹은 그 다음이며, 벼루는 가장 둔한 것이다. 이는 어찌 둔한 자가 장수하고 날카로운 자가 요절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그 쓰임을 두고 말하자면 붓은 가장 동적(動的)이고, 묵은 그 다음이며, 벼루는 가장 조용한 자이다. 이 또한 어찌 고요한 자는 장수하고 요란스러운 자는 요절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아, 나는 여기서 양생의 도를 얻었도다.”
-벼루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최병규 교수님께서 벼루이야기를 해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벼루이야기는 매주에 한 번씩 연재됩니다. 다음 주부터는 화요일에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병규 교수님 약력
전공분야 중국문학
안동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연구실 인문3201
담당과목기초중국어회화, 중국문학사, 스크린을통한 실용중국어, 중국고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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