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따른 기소를 둘러싸고 말 성찬이 풍성하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성남시장 시절에 함께 일한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알고 있냐'는 질문에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후 이 대표와 김 전 처장이 2015년 해외 출장 당시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 대표는 또 지난해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경기도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 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토교통부가 직무유기로 문제 삼겠다고 성남시를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용도변경을 해줬다’라고 발언해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도 기소됐다.
이를 두고 여당과 야당은 물론 양 진영의 지지자들까지 ‘사필귀정’, ‘정치탄압’ 등을 운운하며 상대 비방에 여념이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잣대로 삶을 재단해 나가며 일생을 보낸다.
성장하는 과정이나 삶의 환경에 따라 사람에겐 자신만의 고유한 잣대가 형성돼 있다.
때문에 그 잣대의 기준이 각각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역시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다수 일반 국민과 달리 유독 정치인들의 잣대는 고무줄처럼 대중이 없다.
과거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고 쉼 없이 말을 바꿔 쏟아낸다.
검찰 불출석을 둘러싸고도 마찬가지다.
이 대표는 지난 2016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의 대면 조사를 거부하자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의 수사 불응은 이미 예정된 것. 법 앞에 평등함을 증명하기 위해 불법적 수사 불응에 국민과 동등하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강제수사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작금의 사태와 관련해 이 대표는 자신을 법 앞에 평등한 일반 국민이 아니라 법을 초월한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잣대와 자신에 대한 잣대가 이토록 상반된 괴리를 보이는 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한 답변을 듣고 싶다.
이 대표가 주요 정책으로 내세웠던 기본소득에 대한 말 바꿈도 들여다보자.
미국 타임즈 지면 1회 광고비로 1억900만 원씩이나 들여 홍보에도 열을 올리던 기본소득 정책에 대한 비판에 지난 2021년 7월 ‘나는 포퓰리스트’라고 강변했던 이 대표다.
그런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같은 달, 상대 후보의 비판에 ‘제 1공약이 아니다’라며 슬며시 뒷걸음쳤다.
그러더니 같은 해 11월 ‘소액이라도 실시해야 한다.’라며 다시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그러나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올해 1월 신년기자회견에선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는다’라고 다시 말을 뒤집었다.
이처럼 정책에 대한 소신이나 잣대도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드는 등 일관성 없이 말을 바꾸는 게 습관처럼 보인다.
어디 이 대표뿐이겠는가. 정치인들의 이중 삼중 잣대는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특정된 것도 아니다.
그들의 어록을 살펴보면 모두가 치매에 걸린 듯 하나같다.
어제 했던 말도 날이 바뀌면 손바닥 뒤집듯 다르게 말한다.
여당 시절 그토록 핏대 올리며 추진하던 정책도 야당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대하느라 또 정신이 없다.
이러니 무슨 국가발전이고 국민 통합이 이뤄지겠는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으며, 국가와 민족의 개념은 당리당략에 따라 아예 도외시 한다.
지난 1997년 15대 대선에 나선 김대중 후보가 10월 8일 관훈클럽에서 한 기자회견은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 중 압권으로 꼽힌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말 바꾸기 논란을 어떻게 피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도 유명하다.
당시 김 후보는 ‘저는 일생에 거짓말 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약속을 못 지킨 것이지 거짓말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4번째 대선에 나서며 정계 은퇴 약속을 번복한 것에 대한 변명이었다.
지킬 생각이 없거나 지켜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 하는 약속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1990년 내각제 합의 부인도 유명한 말 바꾸기 중 하나다.
내각제 합의를 부인하던 그는 같은 해 10월 25일 자신이 서명한 내각제 합의각서가 중앙일보에 보도되자 ‘내각제 약속이 국민 위에 있을 수 없다’라며 거짓말 논란을 피해갔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을 단호히 막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자 거짓말이었다. 그의 캠프나 정부 관계자들은 쌀 수입개방이 피할 수 없는 국제정세임을 알고 있었다.
이처럼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나 약속을 어긴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권력욕에 함몰돼 앞뒤 분별없이 내뱉은 말들이 결국엔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도 모른다.
보도에 따르면 대선 열기가 한창이던 지난 2월 고 김문기 처장의 아들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김 전 처장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 자료를 공개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 전 처장의 아들 김 모 씨는 이날 국민의 힘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후보는 왜 아버지를 모른다고 거짓말하는지 궁금하다’라며 부친인 김 전 차장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재직 당시 알았다는 정황 자료를 공개했다.
2015년 1월 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스카이타워 전망대에서 이 후보와 김 전 처장이 마주 앉아 식사하는 사진, 뉴질랜드 오클랜드 앨버트 공원에서 이 후보와 김 씨가 손잡고 있는 사진 등이다.
김 전 처장이 딸에게 보낸 영상에서 ‘오늘 시장님, 본부장님과 골프를 쳤다. 너무 재밌었고 좋은 시간이었어’라고 한 발언도 공개됐다.
김 씨는 이 후보를 향해 ‘작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버지 발인 날이었다. 그날 이 후보는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나와 춤을 추는 모습을 보였다’라며 ‘이 모습을 80대 친할머니가 TV를 통해 보고 오열하고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 씨는 ‘그것을 보고 우리 가족 모두가 한 번 더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꼈다’라며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해 모른다던 이 후보가 자신이 알지 못하던 타 후보 선거당원 빈소에는 직접 찾아가 애도하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억울해했다.
이 후보가 당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선거 유세차량 사망사고로 숨진 국민의당 당원 빈소를 조문한 것을 빗댄 것이다.
유족이 공개한 자료와 항변에 비춰볼 때 ‘몰랐다’라는 이 대표의 말은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질 않는다.
물론 이제 법원의 판단에 맡겨질 문제다. 그러나 이 사례에서 보듯 정치인들은 이제라도 자신에게만큼은 공정한 잣대를 들이대길 바란다.
정치에 대한 신뢰성이 바닥에 떨어진 이유는 자명하다.
정치인들의 말 바꾸기와 거짓말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달라져야 할 때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타인에 대해 엄중한 잣대를 댔다면 자신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