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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교수의 벼루이야기
  • 김한동 동부본부장
  • 등록 2022-11-16 17: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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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명은 동한에서 비롯된, 문학성 있는 연명은 당대(唐代) 저수량(褚遂良, 596-658)이 지은 연명




초기의 연명은 대개 벼루의 덕을 칭송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소장자의 서정적 회포나 기념적 의미를 토로하는 내용도 많이 담게 된다. 이로부터 벼루는 귀중한 문방도구에서 문인들이 평생토록 곁에서 지키며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내지는 정신적인 고향이나 안식처로 자리 잡게 된다. 역대 연명 가운데 대표적인 유명한 연명들을 시대별로 몇 편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온윤함은 덕성에 비할 수 있고, 모양은 방정하도다. 옥지를 돌아 은하수를 퍼붓네. 영원히 그것을 보배로 여김이 실로 온당하리라.(潤比德, 式以方, 繞玉池, 注天璜. 永年寶之, 斯爲良.)



-당(唐), 저수량(褚遂良, 596-658), 연명 


악비의 단계연명

*아름답도다, 이 돌이여! 군자의 본보기로세. 그것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덕을 살펴야 하리라.(懿矣茲石, 君子之則. 匪以玩物,維以觀德.)-송(宋), 소식(蘇軾, 1037-1101), 단연명(端硯銘) 

 

*굳건함을 견지하고 청백함을 지키며; 갈아도 닳아 얇아지지 않고, 검은 물에 더럽혀져도 검게 변하지 않네.(持堅,守白,不磷,不緇.)-송(宋), 악비(岳飛, 1103-1142), 단연명(端硯銘)

 

*벼루는 비록 철이 아니나 갈아 구멍을 내기가 어렵고, 마음은 비록 돌이 아니나 그것과 같이 굳건하네. 그것을 지키며 도를 잃지 않고 스스로 온전하게 지키리라.(硯雖非鐵難磨穿, 心雖非石如其堅, 守之弗失道自全.)-송(宋), 문천상(文天祥, 1236-1282), 연명(硯銘)  

 

*골격은 풍성하여 강하고, 몸은 굳건하여 바르네. 사람이 모두 이렇게 된다면 천하가 바르게 다스려지리라.(骨茂以強, 體凝而正. 使人如此, 天下其定.)-명(明), 예원로(倪元璐, 1593-1644), 단연명(端硯銘)

 

*선골은 견고하고 옥의 청결함을 지녔네. 그대는 어디에서 오셨는가? 오양성(단계연의 고향인 광조우의 별칭임.)이로다.(仙骨堅, 玉之淸. 子何來, 五羊城.)-청(淸), 금농(金農, 1687-1763), 단연명(端硯銘) 

 

*단정하고 바르며 청렴하고 고결하니 그 돌로써 사람에게 비유하네. 덕이 있는 자는 반드시 그를 추종하는 자가 있기 마련이라 책상 위의 진귀한 보물로 여겨지네.(端方廉潔,以石喻人,德必有鄰,席上之珍.)-만청(晩淸)-민국(民國), 오창석(吳昌碩, 1844-1927), 단연명(端硯銘)

 



연명은 원래 동한시기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연대나 이름만 기록한 것이 아닌 비교적 문학성이 있는 연명은 당대(唐代) 저수량(褚遂良, 596-658)이 지은 연명부터 시작되어 송・원・명・청・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지어졌다. 전술한 바와 같이 위에서 인용된 연명의 내용들을 보면 모두 벼루의 덕성을 찬미하면서 그것을 본받고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 남포오석 이가환(李家煥, 1742~1801) 명문 벼루(2232.85) 개인소장


뒷면에 세겨진 연명


그 가운데 악비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중국 남송시기의 무장으로 중국 역사에서 관우와 버금가는 기개와 의용(義勇)을 지닌 인물이다. 위 악비의 연명을 보면 그 인품이 그가 지은 연명을 통해 유감없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역시 동시대 인물로 절개가 높은 충신이었던 문천상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인용한 그의 연명을 보면 정기가(正氣歌)를 지으며 끝까지 원나라에게 굴복하지 않고 절개를 지키던 그의 기개와 기상이 그대로 묻어져 있다. 그리고 명대 예원로(倪元璐)의 연명에 나타난 정의감과 우국정신은 이자성의 난에 자결한 평소 그의 지조와 인품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의 연명은 단순히 벼루의 덕성을 언급한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인지사(仁人志士)들이나 선비문인들의 평소의 생각과 정신을 잘 담고 있는 보고라고도 할 수 있다.  



선비문인들의 벼루에 대한 이런 태도와 정신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고려와 조선시대 우리나라 문인들도 연명이나 벼루에 대한 시인 연시(硯詩) 등을 통해 벼루의 미덕과 절조를 찬미하면서 그것을 언제나 자신의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 대표적인 작품들을 시대순으로 몇 편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벼루 뒷면의 명문 내용과 작자와 제목을 지운 듯한 흔적 


벼루 네 측면에 새겨진 문양

 



*벼루야, 벼루야! 네가 작다하여 너의 수치가 아니다. 네 비록 한 치쯤 된 웅덩이지만 나의 무궁한 뜻을 쓰게 한다. 나는 비록 육척 장신인데도 사업이 너를 빌어 이루어진다. 벼루야 나는 훗날 너와 함께 죽기를 바라나니, 우리 서로 일체가 되어 생사를 함께 하자꾸나.(硯乎, 硯乎! 爾麽非爾之恥. 爾雖一寸漥, 寫我無盡意. 吾雖六尺長, 事業借汝遂. 硯乎! 吾與汝同歸, 生由是死由是.)-이규보(1168~1241),「작은 벼루에 대한 명(小硯銘)」



 

*처음 천지가 생겼을 때에 여섯 구멍[六鑿]이 패여지지 않았다. 이(伊)수와 낙(洛)수가 마르게 되매 올챙이가 나오고 회수(淮水)의 제방이 터지매 용사(龍蛇)가 날뛰었네. 정기(精氣)가 돌에 모였는데 새기거나 파놓은 것이 아니다. 벼루의 몸은 곤괘(坤卦)의 고요한 것을 상징하였으니, 내가 잠심(潛心)하여 대하였네. 평탄하여 언덕이 없고 금 소리와 옥 빛이네. 자연(自然) 그대로 너의 용맹은 어떠한 구름도 일으키고 달을 토하네. 누구가 벗을 삼는고, 군자가 곁에 있다. 어찌 물건을 좋아함이랴. 너를 본뜨려는 것이다(.萬象鴻蒙, 未分六鑿. 伊洛渴而科斗出, 淮堰决而龍蛇拔. 氣鍾于石, 匪鐫匪刮. 體像坤靜, 潛心對越. 坦無畦町, 金聲玉色. 爾勇何其, 興雲吐月. 誰其友之. 君子在側. 豈伊玩物, 惟爾之則.)-이첨(李詹, 1345-1405),「몰지연명(沒池硯銘)」

 



*그 성품은 순수하고 그 재질은 단단하여라. 벗이 오직 넷뿐인데 유익한 이는 하나로세.(純厥性, 確其質. 友惟四, 益者一.)-이행(李荇, 1478-1534),「심현숙(沈顯叔)의 집안에 보관되어 있는 선주연석(宣州硯石)의 명(銘)」



 

*나의 벗 도군(즉 벼루)은 매우 짧고 작지만, 밖은 모나고 속은 평탄해 흠이 전혀 없네. 어찌 꼭 풍자벼루처럼 한 길 넘어 커야 할까! 지금 바로 즉묵후에 봉해 주어도 되리라.(吾友陶君絶短小, 外方中坦百無尤. 何須風字丈餘大! 便可封爲卽墨侯.)-윤선도(尹善道, 1587-1671),「작은 벼루를 노래하다(詠小硯)」

 

*외부는 방정하여 바뀌지 않고, 내부는 비어서 먹물을 용납하네. 오직 부지런히 세탁해서 끝내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하리라.(外方不遷, 內虛能容. 惟勤洗濯, 毋與垢終.)-송시열(宋時烈, 1607-1689),「칠물명(七物銘)」

 

*벼루야, 벼루야. 나와 함께 늙어가네. 내 붓이 이미 퇴화되었거늘 너도 어찌 늙지를 않겠는가! 이제 늙었구나, 늙었구나. 너는 장차 흙과 함께 늙겠구나.(硯乎硯乎. 與我同老. 我筆已退, 爾胡不老. 老矣老矣. 其將與土同老.)-이유원(李裕元,1814-1888),「예연명(瘞硯銘)

 

*광양(光陽)의 송천사(松川寺)에 오래된 비석(碑石)이 있었다. 그 비석 글씨가 고우면서 힘차서 명품이라 할 만했는데, 절이 폐해지면서 비석도 잘렸다. 내가 그중에 한 조각을 구해서 잘 다듬어 벼루로 만들고는 다음과 같이 명을 지었다. 이 돌이 과거에는 글을 싣더니 지금 와선 먹물을 담고 있구나. 그나저나 문자와 인연이 있는 아아, 아름다운 이네 돌이여. 부처 떠나 유학으로 돌아왔으니 오랜 세월 영원토록 끝내 길하리.(光陽松川寺有古碑。字娟而遒。類名蹟。寺廢碑亦折。余得一片。斲以硯之。銘曰。昔載筆, 今載墨。文字緣, 猗此石, 舍佛歸儒, 永終吉)-황현(黃玹,1855~1910),「松川硯銘」




*이 벼루가 우리 집에 전해 오기 시작한 것이 몇백 년의 세월이 흘렀는지 알지 못해라. 그런데 가운데가 닳아서 뚫어질 듯하니 선조의 가문을 일으킨 유래를 알 만하네. 이것이 어찌 저 옛날의 묵장이나 청전 정도에 비길 바이겠는가. 그러니 후손들이여 열심히 여기에 씨 뿌리고 거두어서 응당 이것으로 기름진 논밭을 삼아야 하리라.



 (硯之爲吾家傳。不知閱幾百年也。觀其盡心而欲穿。可以知祖先起家之有由焉。是豈僅比諸古之墨帳靑氊也。宜後人之勤于播穫。而以此爲良田哉.)

 -  이남규(李南珪,1855-1907),「집에 보관된 옛 벼루에 대한 명(家藏古硯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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