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최저기온을 갱신하며 매섭게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가뜩이나 코로나 장기화로 주름진 서민 경제에 한파까지 겹쳐 설상가상이다.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부 당국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부동산 정책을 뒤바꾸며 아파트 매입 등을 부추기던 부동산 시장은 한파가 오기도 전에 이미 얼어붙어 깨어날 기미가 없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 처방책에 돌입한 미국 연준의 두세 차례 빅스텝에 휘청거리는 국내 부동산 시장이 심상치 않다.
빚을 내 아파트를 장만했던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족 소유분 중 벌써 금리 부담으로 인해 경매 처분되는 아파트가 있다는 소식이다.
어디 이들뿐이겠는가. 앞으로 유사한 경우가 상당수 반복될 테고 이자 부담에 보유 주택을 매도하고자 하는 사례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매수심리마저 얼어붙은 상태라 거래가 한산하다는 업계 소식을 감안할 때 당분간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명약관화한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분양 아파트마저 급증하고 있다는 암울한 소식도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강원 원주시, 경기 의왕시 등 ‘미분양 청정 지역’으로 꼽히던 지역에서 수개월 새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하고 있다.
혁신도시 개발, 교통망 확충 등 호재로 지난해 다른 지역보다 큰 폭으로 뛰었던 집값이 금리 인상 여파로 올 하반기 급락세로 돌아서자 주택 매수자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주택시장 호황기에 대거 착공한 주택 물량이 쏟아져 나오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확산하는 것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업계 분석이다.
지난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원주시 미분양 주택은 1천49가구로 집계됐다. 작년 9월 이후 올 9월까지 ‘미분양 제로’를 유지해 오다가 한 달 만에 1천 가구가 넘는 미분양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우려 속에 올해 부동산 시장이 유례없는 한파를 맞고 있다.
지난달까지 아파트값 하락 폭이 한국부동산원 시세 조사 이후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극심한 부동산 침체라는 분석이다.
지난 1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전국 아파트값은 1월부터 11월까지 4.79%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03년 12월 시세 조사 시작 이후 연간 기준 가장 큰 하락 폭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11월 전국 아파트값은 한 달 만에 2.02% 떨어지며 월별 기준 역대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도 매주 사상 최대 하락 폭이 이어지고 있어 올해 연간 누적 변동률은 7% 안팎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낳고 있다.
최근 세종 –11.99%, 대구 -9.20%와 함께 지난해 상승 폭이 컸으나 –6.25%까지 하락한 수도권이 아파트값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파가 크다.
서울의 경우 지난달까지 누적 변동률이 -4.89%인데, 지난달 한 달 새 2.06%가 떨어졌다.
최근 서울에서는 급급매, 초급매가 아니면 거래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지난해 신고가보다 수억 원씩 가격이 하락한 단지가 수두룩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82㎡는 지난 9일 26억7천600만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지난해 11월에 찍은 신고가 32억7천880만 원과 비교할 때 8억 원 넘게 떨어진 액수다.
지난해 9월 11억2천만 원에 팔렸던 성북구 하월곡동 래미안루나밸리 84㎡는 지난달 5일 이보다 3억4천만 원 낮은 7억6천만 원에 거래됐다.
내년 들어서는 부동산 경착륙에 따른 사회적 문제가 대대적으로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특히 2020년과 지난해 ‘영끌’, ‘빚투’(빚내서 투자) 등으로 집을 산 2030 세대 상당수가 아파트값 급락세에 직격탄을 맞게 된 상황이다.
고금리 기조가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집값 하락과 대출이자 부담 사이에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서다.
깡통전세·전세 사기 등의 피해가 확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천71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천954건 대비 25.9% 증가했다.
이번 달 통계를 빼더라도 이미 연간 기준 역대 최고치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 만료 시점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세입자가 신청하면 법원이 내리는 명령이다.
문제는 극심한 부동산 한파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이다.
최근 연구기관들은 금리 인상 악재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대출 우려 등이 맞물려 내년 부동산 시장이 올해보다 더 어두울 것이란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은 내년 전국 아파트값이 5.0%, 서울은 4.0%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고, 한국건설산업연구원도 내년 전국 주택 매매가격은 2.5%, 수도권의 경우 2.0% 하락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김규정 한국투자증권 자산승계연구소장은 “당분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 현상에 따른 경제 침체 우려도 크다”라며 “내년에도 집값은 하락세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이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상황에 놓여있는데도 정부 당국이나 정치권에선 규제 해제 등의 소극적 대책 외에는 뾰족한 수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는 '2023년 경제정책방향' 발표를 통해 규제지역 추가 해제를 예고했다.
올해 3차례의 단계적 해제에도 여전히 규제지역으로 묶여 있는 광명·하남·과천·성남 등 수도권 4곳과 강남을 제외한 서울이 그 대상이 될 전망이다.
주택 거래 침체와 집값 급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거래에 숨통을 틔워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다주택자 대상의 취득세, 양도세, 대출규제도 전방위적으로 완화된다.
이에 앞서 국토부도 지난 10일 서울과 경기도 과천, 성남의 분당·수정, 하남, 광명 등 5개 지역을 제외한 전국의 부동산 규제지역을 전면 해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조치들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추가적인 집값 하락을 막을 순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금리 상승이 멈추기 전까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규정 소장은 "내년 상반기 저점에 진입하는 시점이 됐을 때 다주택자들을 독려할 수 있을 정도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이제 부동산 정책은 여러 요인이 맞물려 해법이 쉽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순 없는 다급한 시점에 다다랐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이를 도외시하고 연일 상대의 말꼬리를 꼬투리 삼아 정쟁만 일삼고 있다.
입버릇처럼 민생을 외쳐대는 정치인들도 부동산 해법에는 자신이 없는지 함구 일색이다.
이대로 간다면 부동산 시장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치는 여파가 상당할 것이라는 분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루가 멀다고 이태원 참사 및 노동 개혁 등에 어설픈 화두를 던지는 정치인들이 현재의 부동산 한파를 경시한다면 중대한 경제위기를 초래한 데 따른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정부 당국과 머리를 맞대고 시급히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년에도 멈출 기미가 없는 고금리 여파에 수많은 영끌족이 거리로 내몰릴 것이 자명하다.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