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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규 교수의 벼루 이야기
  • 김한동 동부본부장
  • 등록 2022-12-27 00: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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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안동의 벼루-조선시대 안동벼루의 위상


1)조선시대의 주요 벼루 산지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은 작은 편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벼루 산지가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시작해 조선 말기까지 존재한 우리나라의 벼루 산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많은 듯하다. 이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한반도 28군데 벼룻돌 산지를 훨씬 능가하는 다양한 종류의 우리나라 옛 벼루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점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가 있다. 



국토면적이 우리보다 수십 배가 큰 중국과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으며, 또 일본에 비교하면 더 많을 정도로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수많은 벼루 산지가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문화를 매우 숭상한 민족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벼루를 구해오기도 하였지만 조선시대 이후부터는 사신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벼루를 중국 등 다른 나라에 선물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벼루는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공물 중의 하나였음은 옛 자료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가 있었다. 






 조선 안동석 일월연(30, 24, 5센티개인소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현재 전해지는 우리나라 벼루산지에 대한 자료는 매우 적어 모든 벼루산지에 대한 정확한 파악은 어렵고 일부 고자료들을 통해 대략적인 면모만 알려지고 있을 따름이다. 거기다 오늘날 전해지는 우리나라의 벼루에는 대부분 연명이 새겨져 있지 않아 벼루의 산지는 물론 벼루 제작자를 알 수가 없는 것이 대다수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우리나라 고연의 산지와 제작자에 대한 고찰은 마치 권도홍 씨의 말대로 옛 궁전이 허물어진 황량한 터의 벌판을 혼자 헤매는 격이다. 더구나 조선시대 중앙관서에는 먹장은 있어도 벼루장은 따로 없었던 것을 보면 조선시대 벼루는 꼭 전문가 장인들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근처에서 돌을 쉽게 구해 대충 깎아 만들어 사용한 듯하다. 




이 점은 우리나라 옛 벼룻돌의 수없이 다양한 석질과 어리숙하고 소박한 형제와 조각문양을 통해서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다. 여하튼 이런 연유들로 인해 우리나라 벼루산지는 더욱 오리무중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앞으로 고증과 발굴 작업 등 더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것이다. 




 

2)조선시대 안동의 벼루

 



우리나라 벼루산지에 대한 기록은 『경도잡지』、『임원경제지(임원십육지)』、『규합총서』、『오주연문장전산고』 등에 산재하고 있는데, 이에 의하면 북으로는 함경북도 종성에서부터 남으로는 전라남도 강진에 이르기까지 29군데가 있으며, 팔도 곳곳마다 벼룻돌이 거의 고르게 생산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벼룻돌의 우열에 있어서는 기록에 의하면 다소 차이가 있는 듯한데, 그 가운데 가장 자세한 기록을 남긴 서유구(1764~1845)의 『임원경제지』 속의 ‘東國硯品’의 기록에 의하면 보령의 남포석을 최고로 극찬한 반면에 “안동의 마간석은 그 석질이 가장 나빠 비록 그 좋은 것일지라도 다른 돌에 미치지 못한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선후기 남포석 포도문벼루(9.818.24), 개인소장



이는 서유구보다 앞선 인물로 우리나라에서 벼루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학자라는 평을 얻고 있는 유득공의 견해를 따르고 있다. 뿐 아니라 비슷한 시대인 성해응(1760~1839)이 지은 『硏經齋全集』에 실린 벼루에 관한 이야기도 유득공과 서유구의 견해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안동의  벼루에 대해 똑 같은 폄하의 말을 기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안동의 벼루는 18, 19세기 당시 우리나라에서 산출되는 벼루 가운데 그 품질이 가장 열악한 것이었다는 결론이 성립되는 것인가? 사실 유득공과 성해응은 긴밀한 교류관계가 있어 유득공이 말년에 성해응에게 발해고 서문까지도 청하였던 사실이 있듯이 성해응의 벼루관은 유득공의 견해를 맹목적으로 답습한 감이 없지 않아 안동의 벼루에 대한 성해응의 기술이 공정하고 객관적이었다고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로 이규경(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硯材辨證說」에서 우리나라의 벼루로 남포의 벼루가 최고이고 그 다음은 바로 안동 구룡산의 물에 잠긴 마간석이라고 하였다. 구룡산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안동 남후면 암산에 있는 독천이라고 보는데 이견이 없다. 남포의 벼루는 그 어떤 책에서도 최고로 인정받아 이설이 없지만 문제는 안동의 벼루에 대한 그의 평가이다. 




권도홍씨가 『벼루(대원사, 1989)』와 『문방청완(대원사, 2006)』에서 소개한 안동 마간석 벼루길이 약 30센티


그는 이렇게 안동의 벼루에 대해 기존의 설을 뒤엎고 그것이 남포연 다음으로 좋다고 하였으니, 거의 비슷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안동의 벼루에 대한 학자들의 평가가 서로 많이 달라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안눌(1571~1637)이 지은 『東岳集』의 「端州錄」에는 당시 홍문관에 있던 大學士硯 벼루가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안동부사 홍리상이 바친 큰 돌벼루로 대체되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홍문관에는 옛날에 대학사연이 있었는데, 바로 나의 증조부 용재공(이행)이 둔 것이다. 임진년의 병화에 없어졌는데 오봉 이상공이 안동부사 홍리상에게서 받은 큰 돌벼루로 그것에 대체하였다. 그리하여 단주의 옥연적과 옥문진을 구해 그것과 함께 짝하게 했다. 또 근체시 한 수를 지어 삼가 바치며 알량한 마음을 펼치도다.”

 




안동의 마간석 벼루돌은 그 석판이 대개 큰 덩어리로 떨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안동부사 홍리상이 이오봉에게 바친 벼루는 안동의 마간석 벼루로 짐작할 수가 있으며, 따라서 안동의 벼루가 당시 특산물로서 호평을 받고 있었음도 미루어 알 수가 있다. 







뿐 아니라 1659년에 간행된 선조 때의 문신 이의건(1533~1621)의 유고인 『峒隱稿』 권3에도 보령의 성주산 남포벼루를 칭송하며 그것이 안동의 벼루에 뒤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詩가 있는데, 이로 미루어 안동의 벼루도 당시 남포벼루와 대등한 위상을 지니고 있었음을 볼 수가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안동벼루를 최초로 폄하한 장본인인 유득공이 지은 다음과 같은 시구에서도 안동벼루의 위상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있다.





 

“안동의 마간석은 검붉은 흙빛이요 남포의 화초석은 벌레가 좀먹은 듯. 삼한의 둔한 장인 멍청하기 짝이 없어 온 나라가 온통 모두 風字式 벼루를 쓴다네. 근래 들어 명사에 석치란 이가 있어 가을꽃과 귀뚜라미 즐겨 새기었다네. 홍주 땅의 아전이 그 방법을 배워서 원래 생긴 돌 모양에 대략 꾸밈 더했다네.”



 



위의 시는 냉재 유득공이 지은 「幾何室藏端硯歌」란 작품인데, 그 가운데에서 석치 정철조의 벼루에 대해 찬미한 부분만을 인용한 대목이다. 여기서 그가 당시 조선의 벼루로서 남포연과 안동의 자석벼루를 병행하여 거론한 점은 바로 안동벼루가 조선 최고의 벼루인 남포연에 버금가는 점을 시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안동의 벼루가 언제부터 만들어졌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4권의 「安東大都護府」의 토산 조에는 “자석(紫石) 독천(禿川)에서 나오는데, 벼루를 만들 수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이 책이 편찬된 시기는 1530년이지만, 이 책이 원래 1481년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을 수정한 교정본임을 감안한다면 15세기 경부터 안동에는 독천 벼루가 생산되었음을 추측할 수가 있다. 






안동 암산 입구




1600년대 초기에 편찬된 안동의 향토지인 『永嘉誌』 권2 土産 부분에도 “독천에서 자줏빛 벼룻돌이 난다.”라고 적혀 있지만 이 책이 지어진 연대가 『동국여지승람』보다 한참 뒤라 안동 자석벼루가 최초로 생산되기 시작한 연대를 알아내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문헌 속에 나타난 안동의 자석벼루는 조선중기 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으로 1584년(선조 17)부터 1647년(인조 25)까지 생존했던 인물인 澤堂 이식(1584~1647)이 지은 「안동 박사군이 보낸 큰 벼루에 감사하는 노래(謝安東朴使君寄大石硯歌)」에서는 멀리 안동의 한 친구로부터 받은 마간석 대형 벼루에 대해 감사하며 이를 읊조린 시가 있으며, 또 의성 출신의 문인 이민성(1570~1629)이 지은 시 가운데 「硯工 黃永淸이 내가 얻은 硯材가 화산에서 가장 뛰어난 양간석이라고 칭하며 몇 점을 제작하여 손수 석품을 품하니 모두가 대단히 절묘하다고 하여 이를 부로 지어 줌」이라는 제목의 시에서도 안동의 자색 벼루가 단계연에 뒤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찬미를 읊은 문장이 있다. 








암산 계곡 정경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서 지칭하는 자색의 벼루는 의성의 화산서원 부근의 못에서 나는 벼루로 짐작되는데, 그 때문에 그는 아마도 마간석이라는 말 대신 ‘양간석’이라는 칭호를 쓰고 있는 듯하다. 여하튼 양간석이든 마간석이든 모두 안동 남쪽과 의성 부근에 걸친 붉은 자색 계통의 벼룻돌임은 확실하다. 뿐 아니라 유득공이 지은 硯銘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상에서 유명한 벼루들에 대한 찬가가 있는데, 그 가운데 우리나라의 종성석、북청석、위원석、안동석、남포석、평창석、풍천석 등을 노래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우리나라의 자석벼루로는 위원석과 안동의 마간석을 들고 있다. 








바닥의 마간석






여기서 그는 “태백산맥의 남쪽에는 자색의 벼루가 나 옥같이 온윤한데 고운 최치원이 얻어 계원필경을 짓고, 김생이 그것을 얻어 창림의 비문이 생겼으며, 솔거는 그것을 얻어 절묘한 소나무를 그렸도다.”라고 말하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아직까지 안동 자석연의 산지는 건재하며 강바닥에는 마간석이 드러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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