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태화동에 육사생가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육사 생가 소유주가 태화동으로 가져간 것이 태화동 '육사생가' 의 탄생의 전부이다.
현재 태화동의 '육사생가'는 관리가 되지 않아 시민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생가 앞에는 쓰레기들이 내팽개쳐져 있고, 육사생가의 대문은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다.
타지에서 이 곳을 '육사생가'로 알고 찾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생가 입구에 육사생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현재 육사생가는 육사문학관 바로 옆에 복원이 된 상태다. 생가를 구성했던 건축자재들은 태화동 생가를 이루고 있지만, 이 곳 소유주가 생가 건축물을 내놓지 않아 육사 선생의 따님인 이옥비 여사 어머니의 이야기를 통한 고증을 통해 복원을 했다고 한다.
육사 선생이 태어난 생가는 그 지역이 수몰이 되면서 소유주가 태화동으로 옮겨왔다. 그 이후 육사추모사업관련인들이 기증하거나 팔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고증을 거쳐 복원하게 된 것이다.
태화동 육사생가는 엄격히 말해 육사가 태어난 원래의 생가이기는 하지만 복원된 생가로 인해 의미가 없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육사생가가 태화동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도 말한다.
태화동 육사생가는 소유주의 기이한 행동으로 또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관리에 소홀함도 문제이지만, 생가를 무속인에 임대를 한 흔적도 있다고 관계자들이 목격했다고 전했다. 여전히 탱화가 벽에 걸려 있다고 한다. 관계자는 육사 얼굴에 똥칠을 하고 있다고 화를 참지 못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안동시에서 건물주에 대한 어떤 조치도 할 수 없다는 행정적인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다. 도청 문화재관련 소속 공무원은 "육사가 누구에요?" 하는 눈빛으로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알아보겠다고 했다.
'민속자료'로 등록이 되어버리면 손을 댈 수 없다는 공무원들의 대답은 어떤 설득력도 없어보인다. 민속자료로 등록이 되었으나 민속자료로서의 소용이 없어졌고, 사람들의 비난만이 무성한 자료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