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가장 나답게 앓고, 가장 나답게 죽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앓는 ‘병’을 통해 그의 삶과 생의 철학을 성찰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세계사를 수놓은 유명인들의 질환에 돋보기를 갖다 대고 ‘병(病)’을 통해 ‘생(生)과 노(老)’를 톺아본 독특한 탐색이 결과물이다. 즉 세계사의 위인 가운데 특정 질환을 앓은 사람을 골라 그들이 질환을 앓게 된 배경·경과·결과와 함께 그들이 겪었던 고통과 대응 방법을 소개한다. 위인전은 대부분 그들이 지닌 남다른 재능과 평범한 우리에게 보여준 끈질긴 노력과 위대한 성취를 들려준다. 그들이 앓은 질환과 감내했던 고통의 시간, 그리고 영원히 묻힌 죽음은 낡고 찢어진 역사의 뒤 페이지에 가려져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위인의 위대한 성취는 거의 대부분 그가 앓은 질환의 원인이거나 결과다.
인간이 스스로 건강의 주체로 살도록 이끌지 못하는 현대의학은 의미 없는 연명의료처럼 환자의 숨만 조금 더 오래 붙여줄 뿐이다. 고장 난 컴퓨터나 부서진 자동차를 고치듯, 지극히 환원주의적인 진단과 처방에 골몰하는 현대의학은 환자가 자신의 병을 성찰할 기회마저 빼앗아버린다. 약 몇 알과 주사 한 방으로 어떤 병이든 낫게 해줄 것 같은 병원은, 기도하는 척하고 헌금만 내면 어떤 죄라도 용서해줄 것 같은 교회와 뭐가 다른가? 죄가 죄인의 것이라면, 병은 환자의 것이다. 교회가 죄인을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듯, 병원도 환자를 건강한 성찰로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죄인이 죄를 고백하듯, 환자도 질환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병(病)’은 왜 피할 수 있는 고통이라고 말할까?
생로병사(生老病死)는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네 가지 고통이다. 그중 ‘병’은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 지목된다. 덕분에 우리는 병을 통해 인간의 삶과 철학에 대한 깊은 성찰을 끌어올릴 수 있다.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종점 ‘사(死)’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누구나 ‘노(老)’와 ‘병(病)’이라는 삶의 계단을 차례로 밟아나간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젊음을 추앙하느라 ‘노’를 혐오하게 되었으며, ‘병’을 죄악시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노’와 ‘병’은 우리가 ‘무찔러야 할’ 그 어떤 것, 원하지 않고 겪고 싶지 않은 그 어떤 것일까? 그렇다면 역으로 생로병사 중 ‘피할 수 있는’ 고통인 병을 통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성찰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는 병에 대한 불안이 과도하게 확대되면서 온갖 담론이 판을 치고 병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성찰이 무시되고 있다.
어디가 아픈지 알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병을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전체적인 삶을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현대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접근도 필요하다. 인간의 삶과 병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가 병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깊은 성찰과 통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병을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의 고통을 통해 더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건강에 관심이 부쩍 늘어난 건 좋은 일이다. 자신이나 가족이 앓거나 앓을 것 같은 병을 알아두는 건 정말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병에만 집중하다 보니 병이 너무 커져버렸다. 늘어난 건 건강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병에 대한 불안이다. 병을 줄이려다 외려 더 커지는 건 아닐까? (중략) 병을 알려면 사람부터 봐야 한다. 그 사람의 생로사를 모르는 채, 어찌 병만 알 수 있을까?”
내 앓는 병을 통해 나를 성찰하기
요즘 우리에게 허락된 병원의 ‘3분 진료’는 그야말로 병만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사가 어찌 3분 만에 환자의 삶(생로사)을 파악할 수 있으랴만, 이를 탓하기 전에 나 스스로 나의 병을 성찰하는 게 옳다. “왜 이 병에 걸렸을까?” “이 아픔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아픔을 두 번 다시 겪지 않을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 내가 앓는 병과 내가 먹는 약으로, 나의 생로병사를 성찰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레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들의 생로병사를 들으면서 내 고통의 해결 방법도 찾게 된다. 또한 놀랍게도 ‘병’은 ‘사’를 성찰하게 해준다.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How to die)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해준다. 죄가 죄인의 것이라면, 병은 환자의 것이다. 교회가 죄인을 진정한 회개로 인도하듯, 병원도 환자를 건강한 성찰로 이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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