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자유로웠던 소송, 욕망의 심판대
  • 임영희 편집국장
  • 등록 2024-05-03 11:40:18
기사수정
  • - 한국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5월호 ‘조선시대 소송’ 발행 -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조선시대 소송’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5월호를 발행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좋은 묏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빈번하게 벌어졌던 산송(山訟)을 비롯한 여러 소송, 그리고 이에 연루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비춰보았다.

 

하루 5건 이상 재판하는 사또 

 

 <소송을 통해 본 조선 사회>에서 심재우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는 조선시대 ‘호송(好訟)’에 대하여 살펴본다. 흔히 조선시대에는 소송이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19세기 지방 군현에서 접수된 민장(民狀)과 그 결과를 요약·정리한 『민장치부책(民狀置簿冊)』을 분석해 보면, 지역별 민장 접수 횟수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기록에 남아 있는 9개 지역 평균 한 달 민장 접수는 156건에 달한다. 이는 한 달 동안 수령이 하루도 쉬지 않는다고 가정해도 하루에 5건 이상의 결코 적지 않은 소송을 처리해야했음을 말해준다.

 필자는 당시 호송(好訟) 풍속이 가능했던 이유를 개방적인 소송제도에서 찾는다. 중앙과 지방의 구분 없이 관청 개좌일(開坐日)에는 상시로 소장(訴狀)을 제출할 수 있었다. 또한 신분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누구라도 소송을 할 수 있었다는 점도 조선시대 소송제도의 큰 특징이다. 이 때문에 노비는 물론 여성들도 소송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사천조(私賤條)에는 ‘삼도득신(三度得伸)’과 같은 규정이 있어, 수령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재심을 요청할 수 있는 길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었다. 

 


'동헌'에서 열린 재판(출처: 국립민속박물관)


 

 소송에서는 재판관 역할을 하는 수령의 청렴함과 능력에 따라 결과에 대한 희비가 갈리기도 하였다. 백성들은 수령이 주관 없이 판결을 내리면 무두질을 해서 이리저리 잘 늘어나는 ‘익힌 노루 가죽[熟鹿皮]’으로 비유하거나, 무능한 재판관을 ‘반실태수(半失太守, 정확히 시비를 가리기보다 양측에 절반씩 나누어주는 등 적당히 판결하는 것)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재판에서 위세에 굴복하지 않고 약자의 편에 서서 많은 백성을 감화’시킨 재판관을 명판관으로 꼽았다.

 

무덤 명당은 곧 후손들의 욕망

 

 <죽은 자의 안식처, 산 자의 소원 상자>에서 최진경 박사(동국대학교)는 묘지를 ‘죽은 자의 안식을 핑계로 현재의 우리가 잘살기를 희구하는 강한 욕망을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잘살고 싶은 욕망으로 산 자가 살아가는 곳뿐 아니라 죽은 자가 안식하는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을 ‘길지(吉地)’라고 칭한다. 그러나 길지는 한정되어 있기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갖가지 다툼이 일어나고, 이 다툼은 재판까지 이르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특히 묏자리를 두고 각종 싸움이 벌어지고, 송사를 통해 판결을 요하는 사례도 빈번했으니 이름하여 ‘산송(山訟)의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18세기 초에 일어났던 박효랑 사건과 같이, 투장(偸葬)에서 비롯된 산송에 재판관의 정실이 개입하며 산송을 처리하던 ‘법정극’은 생사가 걸린 ‘복수극’으로 치닫게 되며 조정까지 알려지게 된다. 이 사건은 길지를 둘러싼 싸움이 왕실이나 유력가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싸워 쟁취해야 하는’ 실존적 차원이었음을 말해준다. 

 조선 후기 야담에 등장하는 묏자리를 소재로 한 이야기에서는 평범한 사람이 알고 보니 아주 유능한 풍수가이거나, 풍수가에게 작은 은혜를 베풀었더니 바로 길지라는 보답으로 이어지는 등 즉각적인 복으로 돌아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를 보면, 산 사람들이 길지를 지향하는 것은 죽은 자의 안식을 핑계로 땅의 기운을 듬뿍 받아 현재 인생을 뒤집고자 하는 절실함이 담겨 있다.

 


박효랑 사건이 수록된 『이향견문록』, 「박효녀」 (출처: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사건 너머를 꿰뚫는 솔로몬의 지혜 

 

 이외에도 웹진 담談에서는 ‘조선시대 소송’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다룬다. 


 ‘스토리웹툰 독獨선생전’ 5화 <칠석에 내리는 비>에서는 노비의 단순한 말 절도로 보였던 송사 너머에 노비들의 부당한 삶이 녹아 있던 진실을 독선생의 눈으로 살펴본다.

 ‘선인의 이야기, 무대와 만나다’의 <분필로 동그라미를 그릴 권한>에서는 솔로몬의 재판을 변주한 다양한 작품 중 연극《회란기》와 창극《코카서스의 백묵원》을 소개한다.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이 선의를 베풀어 아이를 키웠음에도 재판장에 서게 되고 수용할 수 없는 판결을 받지만, 이는 사건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재판관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내린 묘책이었다.


 ‘백이와 목금’의 <정 진사, 산송에 휘말리다>에서는 백이의 아버지인 정 진사 문중 땅에 범장(犯葬)을 한 김 생원이 외지부(外知部)를 내세워 묘 주인을 판결해달라는 소장을 낸다. 범장한 묘에 미리 가본 백이와 목금의 지략으로 사또는 진실을 볼 수 있었고 현명하게 판결한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의 <송사를 없게 하라, 사무당(使無堂)>에서는 전라남도 순천의 낙안읍성 관아 동헌의 편액 “사무당(使無堂)”을 소개한다. 사무당은 공자의 “송사를 처리함은 나도 남과 같겠으나, 반드시 송사함이 없게 하리라.[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의 뜻으로 수령이 업무를 보고 재판도 하는 공간인 동헌에 알맞은 선언이자 당위인 편액이다.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노블즈 인테리어 산본
후원안내
경북농식품 산업대전
cosmos
예천교육청
안동미래교육지구
포토·영상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K-jonghapnews더보기
  1. 호계서원 이야기 - 1편 퇴계 선생의 위판이 없는 향사에 안동 예안향교 측 유림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퇴계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호계서원에 퇴계의 위패 없이 치러지는 향사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호계서원은 '퇴계 선생의 독향서원'이다. 1576년 여강서원 창건 당시 도산서원과 한날 한시에 위패를 봉안했고, 1620년 서애, 학봉 선생의추...
  2. 호계서원이야기 - 2편 시에서 한국국학진흥원에 '호계서원'을 왜 가져다 놓은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은 시에서 "호계서원을 국학진흥원에 가져다 놓을 것이다."라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병일 원장은 안동의 정서를 잘 알 수가 없는 인물이다. 안동사람도 아니고 장관을 지냈으나 안동유림들만...
  3. 안동 시민들, 너무 많은 통장·반장 노인회장 수 줄여라! 안동시의 노인회장, 통장, 반장의 수가 너무 많다. 안동시 노인회장은 545명, 통장은 800여명, 반장은 3,000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통장의 년 수입액은 6,080,000원이라고 한다. 기본수당 400,000원, 상여금 400,000원 년 2회, 그리고 회의 참석수당 20,000원을 년 24회 지급한다. 안동시 옥동의 통장의 연령을 살펴보면 20대와 30대의 통장은 보이지 않고, 40.
  4. 국민건강보험공단, '하늘반창고 키즈' 사업 시작으로 사회공헌활동 시작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정기석)은 지난 4.30일 공단 대표 사회공헌 '하늘반창고 키즈'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선포식을 가졌다.'하늘반창고 키즈' 사업은 전년도에 출생한 복지시설 입소아동들을 선정하여 성인(만 18세)이 될 때까지 지원하고, 전국 178개 지사에서 해당 시설과의 결연 후 매 분기 방문봉사활동을 통한 지속적 ...
  5. 선관위에서 '압수수색'을 할 권한 없어! 안동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3월 8일 보도된 '김형동 의원 선거운동원 조사 '에 대한 보도에 대해 지금까지 확인한 사실 외에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음을 밝혔다. A신문사에서는 김형동 의원의 22대 총선을 위한 선거 관계자들이 보험설계사무소로 위장된 사무실에서 김형동 의원의 지지를 독려하는 전화와 문자를 돌린 혐의를 ...
최신뉴스더보기
한샘리하우스2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