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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트 : 배신당한 남자들 / 수전 팔루디 지음
  • 임영희 편집국장
  • 등록 2024-06-06 12: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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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자들은 왜 저항하지 않는가?”
  • - 여성에게 분노하고 페미니즘을 저주하되, 어째서 자신을 배신한 국가와 사회에 항의하지는 않는가?




여성에게 분노하고 페미니즘을 저주하되,
어째서 자신을 배신한 국가와 사회에 항의하지는 않는가?

★ 『백래시』와 『다크룸』의 저자 수전 팔루디의 또 다른 대표작 ★

6년간 미국 곳곳에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들’을 인터뷰한 르포르타주
박탈감으로 들끓는 현대 남성의 초상화를 그리고
수그러들지 않는 젠더 전쟁의 근원을 추적하다!



스티프트
■ 팔루디의 취재력과 문학적 역량이 숨 막히는 자신감으로 아름답게 함께 펼쳐진다. —《타임》

■ 『스티프트』는 우리 시대의 병리학이다. —《워싱턴포스트》

■ 난센스를 뚫고 나아가고, 남자들 스스로 말하게끔 하며,
그 말에서 독창적이고 공감 어린 통찰을 이끌어 내는 뛰어난 책. 브라보. —《커커스리뷰》

■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격동의 수십 년간 남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섬세하면서도 연민 어린 시선으로 평한 책.
—《뉴욕타임스》

■ 정곡을 찌른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 『백래시』와 『다크룸』의 저자 수전 팔루디의 또 다른 대표작 ★
성난 20대 남성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
방대한 취재와 인터뷰,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토대로
‘화가 난 남자들’의 뿌리를 찾아가는 르포르타주의 역작



페미니스트 저널리스트 수전 팔루디는 1991년 첫 책 『백래시』에서 1980년대 미국의 신보수주의 물결을 타고 페미니즘과 여성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가해진 공격 현상인 ‘백래시(Backlash)’를 조명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백래시』 출간 이후, 20세기 말 미국의 문화적 풍경을 조망하던 팔루디는 당시 언론에서 ‘남성성의 위기’라고 떠들어 대던 현상에 관심을 갖는다. 1970년대 여성해방운동이 미국 전역을 한바탕 뒤흔들고 난 뒤, 집 안팎에서 설 곳을 잃은 남자들이 ‘남자다움’을 잃어 가고 있다는 신음이 여기저기서 새어 나왔다. 비행을 저지르는 소년들, 마약에 빠진 젊은 남성들, 직장을 잃은 무능한 아빠들이 거리를 떠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간의 눈길을 끈 것은 ‘성난 백인 남성(angry white men)’으로 호명된 인구 집단이었다. 이들은 잃어버린 남자다움을 되찾기 위해 갖가지 폭력과 집단적 문제 행동을 일으키면서 사회의 보수화를 주도하는 공화당 지지 세력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분노는 ‘남성의 권력을 박탈한’ ‘남성성을 거세한’ 여자들에게 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팔루디는 가정폭력 가해자 자조 모임을 참관하며 이 문제를 파헤친다. 처음에는 그도 (여느 페미니스트들이 진단한 바와 같이) 남자들이 여자들의 저항에 위기감을 느끼고 지배력과 통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자조 모임에 참여한 남자들은 여성을 구타할 때 스스로 ‘남자답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다음 이어지는 고백은 예상을 빗나갔다. “그때 느낀 권력감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수갑을 차기 전까지만 느낄 수 있었죠. 그러곤 다시, 나는 남자도 아니라는 기분에 사로잡혔어요.”
자신은 남자도 아니라는 기분. 무력하고 통제 불능이라는 느낌. 사실 가정폭력 가해자 남성들이 평소에 갖고 있던 주된 정서는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일상적으로 드러내거나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이 사회가 남자들에게 기대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남자라면 모름지기 ‘핸들을 쥐고 있는 사람’ 즉 주변을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시작부터 ‘개척자’ 이미지가 미국 남성의 표상으로 등극했고, 20세기에 들어서도 말보로 담배 광고에 나오는 카우보이,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 같은 고독한 영웅들이 ‘남자다움’의 모델로 군림해 왔다. 위기에 빠진 남자들에게 주어진 조언이라곤 ‘남성학’ 코너의 자기계발서에 적힌 ‘내 안의 왕’을 일깨우라는 말뿐이었다.
이쯤에서 팔루디는 묻는다. 그렇다면 왜 남자들은 이런 부당한 요구에 맞서지 않는 거지? 왜 남자들은 ‘남자다움’이라는 족쇄로 자신들을 옭아매는 국가와 문화에 저항하지 않는 걸까?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운동을 조직해 사회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비난의 화살을 애꿎은 여성에게, 흑인과 이주노동자에게, 성소수자에게 돌리는 걸까?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더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반대하는가”를 질문하는 대신, “남자들은 왜 그들 자신의 싸움을 시작하지 않는가”를 질문하기 시작한 순간 『스티프트』의 긴 여정은 시작된다.

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남자들

팔루디는 6년 동안 미국 전역을 떠돌며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만난 남자들은 대체로 베이비붐 전후 세대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태어나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일 때 어린 시절을 보냈고, 베트남전쟁 당시 청년기에 접어들어 징집 대상이 되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1990년대엔 대략 삼십 대 후반에서 오십 대 중반 나이였으니, 국가적으로 볼 땐 생산성이 가장 높은 인구 집단에 속했을 사람들이다.
하지만 팔루디가 실제로 목격한 현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후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군수공장의 이직 지원 사무소에서 이력서를 보내고 있는 해고자들, 과격한 ‘남성단체’ 모임에 참석해 설교를 듣는 남자들, 지역 미식축구팀의 충직하고도 과격한 팬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거나 반전운동에 참여했던 남자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에 있던 액션 스타 실베스터 스탤론과 그 변두리의 포르노 배우들……. 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상대를 만나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 상대가 ‘여자’이며 심지어 ‘페미니스트’라는 점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팔루디는 이 남자들의 분노 이면에 숨은 상처를 발견한다.
남자들은 저마다 쓰라린 배신(stiffed)의 기억을 안고 있었다. 이들은 남자다움의 가치를 물려주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가족 같은 회사로부터, ‘여러분이 이 나라의 미래’라고 부추기던 국가로부터, 단물만 빼먹고 버리는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부터 배신당했다. 어릴 적 이들의 아버지가 보여 준 창공을 가르는 인공위성은 그들에게 빛나는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다. 아버지들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보병으로 참전해 전장의 참호 속에서 동료 병사를 돌보며 공동체에 이바지한 남자들이었고, 군수산업이 한창이던 무렵 생산직에 종사하면서 노동조합과 부하직원을 책임진 남자들이었으며, 사회적 쓸모야말로 남자다움의 지표라 굳게 믿던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버지들의 경험과 자산은 더 이상 쓸모를 인정받지 못했다. 평범한 졸병·소시민·노동자의 헌신을 높이 사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점차 화려한 조종사, 고연봉의 화이트칼라, 미디어에서 상품 가치를 인정받는 셀러브리티가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전후 미국 사회를 휩쓴 이 같은 소비자본주의와 기업화, 상품화, 장식 문화는 아버지들 역시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각자도생이 벌어지는 비열하고 처절한 세계 한복판에 아들을 방치해 둔 채 떠나고 말았다.
이내 아들들은 아버지로부터, 직장으로부터, 국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아버지나 기업, 국가에 대고 화를 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정말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녀석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웠다. 갈 곳을 잃은 그들의 분노는 이제 자신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꿰차고 있는 듯한 존재들, 힐러리 클린턴으로 대표되는 ‘성공한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향했다.

남자들은 왜 분노하되 저항하지 않는가:
페미니즘이라는 열쇠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서는 반페미니즘 기조가 유난히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른바 ‘이대남’이 화두로 떠올랐으며, 그들의 사회적 박탈감과 분노를 어루만져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여성가족부 폐지’ ‘여성 징병제’ 같은 공약을 해법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여성을 억압하는 유리천장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금은 ‘여성 상위 시대’이며 오히려 남자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결혼과 취업 시장에서 위축된 남자들의 ‘기를 살려 줘야’ 출생률 저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2023년 말에 일었던 때아닌 ‘집게손가락 논란’에는 ‘청년’ 정치인들까지 가세하여 ‘남성을 조롱하고 음해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음모’를 주장하고 나섰다.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굳이 ‘양성평등’으로 고쳐 부르며 현 상황을 ‘남성과 여성 간에 벌어지는 성별 전쟁’으로 프레이밍해 온 정치 전략은 꽤나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전쟁에서 과연 남자들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이 전략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정말로 ‘이대남’인 걸까?

클릭 장사를 하며 꾸준히도 정력을 뽐내던 이 남자는 내심 허영 가득한 속임수를 감춰야만 했다. (…) 더욱이 장식적인 남성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가 여성에게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점은 특히 중요하다. (…) 이 새로운 ‘남자 중의 남자’는 본인이 장식적인 윤리에 굴복했다는 사실을 감추고자 ‘여성성’에 호통치는 쇼를 선보인다. (…) 그는 기괴하기 짝이 없는 전리품을 자랑하고, 항시 실속 없이 거창하기만 한 통제력과 지배력을 과시함으로써 이런 허영을 추구해 왔다. 그가 완성해 냈다고 떠든 어마어마한 건설 프로젝트, 호텔, 카지노, 항공사 및 대학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재정상 실패, 적자 행렬, 미지급 청구서,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한 익명의 노동자들(“평범한 소시민들”)에 관한 한 편의 호러물이었다. - 본문에서

여성성에 호통치며 실속 없이 돈만 많이 드는 프로젝트를 벌여 놓으면서, 정작 이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삶은 등한시하는 남성 정치인.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이 아닐 수 없다. 팔루디가 묘사한 ‘이 남자’의 이름은 도널드 트럼프이지만, 우리는 거기에 얼마든지 다른 이름을 넣을 수 있다. 그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이 한 편의 ‘호러물’은 지금 우리 현실과 닿아 있다.
팔루디는 남자들에게 말한다. 여러분이 대통령 자리에 앉힌 저 도널드 트럼프가 어떤 인물인지를 회피하지 말고 똑똑히 보라고. 저 인물은 여러분을 편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여러분을 가장 하찮게 여기는 부류이며, 저 인물이 과시하는 남자다움이란 그저 미디어로 과대 포장된 껍데기일 뿐이라고. 실제로 본인은 전쟁에 참전한 적도 없으면서 전쟁담을 떠벌리며 청년 남성들을 베트남으로 내몰았던 로널드 레이건처럼, 저 도널드 트럼프로 상징되는 이 시대의 ‘야성적인 남자들’ 역시 허풍선이 겁쟁이에 거짓말쟁이일 뿐이라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익숙한 집 안 풍경이 처음으로 또렷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불만이라는 오랜 질문으로 돌아가 ‘남자들이 어떻게 본인들의 문화에 배신당하고 있는지’를 목격했고, 이로써 또 다른 사실, 여자와 남자를 갈라놓은 것이 둘을 결속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됐다. 여자들과 남자들의 공통된 기반은 정확히 그들이 그토록 자주 다퉈 왔던 개념, 바로 페미니즘에 있었다. 배신에 맞서 싸우려는 남자들에게 페미니즘은 핵심적인 열쇠를 제공한다. 만약 남자들의 투쟁이 성공한다면, 결국엔 페미니즘 역시 부활의 열쇠를 쥐게 될지도 모른다. - 본문에서

먼 길을 돌아 주어진 열쇠는 ‘또다시’ 페미니즘이다. 팔루디는 여자들에게 여자다움을, 남자들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감옥이 실은 소비자본주의라는 동일한 시스템임을 지적한다. 일찍이 여자들은 여성을 상품화하는 지배 문화에 맞서 싸웠고, 그 결과 “시장에서 물러나 장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됐다. 이제 여자들은 한때 여성에게 요구됐던 장식적 여성성이 남자들 또한 옭아매고 있음을 감지한다. 물론 1970년대 제2물결 페미니즘이 ‘가부장제’라는 명확한 적을 규정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지금의 남성들은 뚜렷한 전선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사회적으로 남성이란 여전히 ‘지배자’이지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그런 남자다움에 응해 주지 않기로 결심하는 순간, 남자들은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이야말로 남자들을 억압하는 기제가 아니라 도리어 해방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만 더 용기 내어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말이다.



-국회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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