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날씨가 계절이 바뀜을 알려주면서 올해도 마지막 한 분기만을 앞두고 있다.
최근 경북 도내 어디라고 할 것 없이 거리에 나가보면 여기저기 도로를 파헤치는 등 공사 현장이 급증한 것을 볼 수 있다.
해마다 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거나 도로포장을 하는 사례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내가 내는 세금이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해당 기관에 대한 시선이 곱진 않을 것이다.
예산을 편성해 놓고도 회기 내 사용하지 않은 예산은 이월하거나 다시 반납해야 하는 데 이처럼 사용하지 않은 예산을 말 그대로 불용예산이라고 일컫는다.
재정자립도가 낮아 교부금 의존도가 높은 지자체들의 경우 회기 초 중앙정부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예산확보에 분주하다.
적절한 예산확보는 다음 일이고 여타 지자체보다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예산을 얻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 보니 예산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쓰다가 남은 불용예산을 반납할 경우 추후 유사 사업의 추진을 위한 다음 해 예산 편성에 제약을 받는 등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불용예산을 회기 내 집행하기 위해 불필요한 사업 집행에 나선다.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거나 아직 쓸만한 도로의 포장을 다시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이 유효적절하게 쓰이질 않고 낭비가 되는 셈인데 이는 결국 주먹구구식 예산 편성의 결과물이다.
재정 분권이 확대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규모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에 비례해 이처럼 점증하고 있는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다는 지적 또한 높아져 가고 있다.
이 비효율적 운영에 자주 거론되는 단골 사례도 불용예산이다.
불용예산의 문제는 비단 일선 지자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정부 각 부처나 산하 공공기관, 교육기관 어느 곳 할 것 없이 대동소이하다.
최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의 1·2차 추경 실제 집행률을 따져보니 93.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차례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안 중에서 2조 7천618억 원이 실제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경은 모두 10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2017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경이 편성됐을 정도다. 추경이 상습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밀하지 못한 예산 계획을 지적하는 소리도 심심찮게 나왔다.
지난 20일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와 함께 분석한 지난해 ‘1·2차 추가경정예산안 집행 실적’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예산에서 40조 835억 원이 추경으로 증액됐다.
그러나 2조 7천618억 원은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실제 집행률은 93.1%에 그쳤다. 본예산까지 포함한 총지출 기준 집행률 97.1%보다 낮다.
추경에 포함된 일부 사업 중 집행을 통한 목표 달성률이 0.2%에 불과한 사업도 있었다. 정부는 코로나19 집단감염 대비를 위해 장애인 거주 시설 518곳에 대한 운영 지원을 사업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실제 지원이 이뤄진 건 1곳에 불과했다. 사업 인지도가 낮아 지원금을 신청한 시설 자체가 4곳에 불과했고, 신청한 시설 중에서도 3곳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애초 목표부터 과도하게 설정했다는 분석이다.
농촌에서의 고용 인력을 지원하는 1차 추경 사업의 경우 1천 명을 목표로 했지만, 실제론 38명에 대해서만 집행이 이뤄졌다.
집행률이 겨우 3.8%에 그쳤다. 농가와 근로자 모두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결식아동 대상 급식비 지원 사업은 2차 추경에서 300억 원이 책정됐는데 실제 집행은 180억 원에 불과했다.
기존 아동 급식 지원을 받는 대상이 이미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돈을 받고 있음에도 이를 확인하지 못해서다.
윤영석 의원은 “제대로 된 수요 조사 없이 사업을 편성하거나 퍼주기식 선심성 예산 등으로 불용금액이 커졌다”라고 지적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전쟁·대규모 재난 상황과 경기침체·대량실업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극히 제한적인데도 문재인 정부에선 추경을 10차례나 편성한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엔 1961년 이후 59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4차례나 추경을 했다. 앞서 2017~19년까지도 추경은 해마다 한 차례씩 이뤄졌다. 2019년의 경우엔 미세먼지 대응이 주된 추경 사유 중 하나였다.
국채를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는 경우 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실제 지난해 1차 추경 총 14조 9천억 원 가운데 9조 9천억 원은 적자 국채 발행을 통해 충당했다.
국채 발행으로 이자 부담까지 떠안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을 사업은 애초 추경에 포함하지 않았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또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만 추경이 가능한 만큼 그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번 정부에선 추경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라며 “지난 정부에선 확대 해석을 넘어서서 사실상 법적 추경 요건을 사문화했다. 불용예산이 많은 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실질 경제성장률 마이너스여야 추경을 하는 등 구체적인 요건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자립도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도농복합형 중소 지자체의 경우 장기간 지속 중인 불황 여파로 인구가 감소하고 담배소비세 등 세수가 줄어드는 재정적 압박이 갈수록 가속되고 있다.
반면 정작 행정 일선에서 예산과 사업계획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직무능력이나 인식의 가벼움에 대한 지적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물론 불용예산에 대한 제도적 폐해가 외려 불용예산의 무분별한 집행을 양산한다는 이들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불용예산 증가와 더불어 사고이월액의 과다 발생 등 혈세 사장의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불구하고 매년 재정 건전성 악화를 되풀이하는 예산 편성에 안일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지적 역시 분명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산은 당해 연도 집행을 전제로 편성된다. 다만 연내 미지출이 예상되거나 불가피한 사유 발생, 손실보상 지연 등의 사유가 있는 경우에 국한해 예외가 인정된다.
그러나 합당한 사유 없이 준공기한 미도래, 사업 기간 미도래, 관계기관 협의 지연, 사업계획변경, 행정절차 장기소요 등으로 이월 및 불용예산이 발생한다는 것은 예산 편성 및 집행에 따른 공무원들의 능동적 자세가 아쉽다는 지적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대해 한국지방행정연구원에서는 불용액 발생 원인을 내부요인과 외부요인별로 분석하고 있다.
연구원은 지난 2020년 연구보고서에서 내부요인을 4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사업부서의 무리한 예산확보 관행을 지적했다. 우선 국비나 내부예산을 확보해야 하고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무리함에서 불용이 발생한다.
둘째는 관행적인 예산 편성을 들었다. 다음 해의 수요예측 등이 없이 인원과 숫자에 맞추어 예산을 편성하는 관행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셋째로 지방의회의 쪽지예산에 따른 불용을 가리켰다.
사업에 대한 준비과정 없이 예산 심의 시 무리하게 밀어 넣는 사업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순환보직에 따른 예산부서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을 원인으로 봤다. 세출예산 과다 편성, 사업의 사전 절차 이행 미숙으로 인한 보조금이나 교부금 반납, 지출하지 못한 예산의 예비비 편성 등이 불용액 증가 요인이라는 것이다.
또 불용액 발생의 외부요인으로는 먼저 법정 특별회계로 인한 불용을 지적했다.
법정 특별회계의 경우 사업 범위나 사업 내용이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고 다년간 사업이 추진된다.
사업 발굴이 힘들거나 사업 추진에 있어서 대부분 민간자본보조사업이라 진도율 저조로 불용액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중앙 부처의 행위적 관례에 따른 불용을 꼽았다.
연구원에 따르면 지자체의 차별화된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중앙 부처에서 국고보조금을 먼저 보내면 지자체에서는 사업 속도상 현실적으로 집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또 공모사업 시기도 불용액 발생의 큰 원인인데 지자체에서 실제로 집행할 수 있는 기간이 짧아 전액 집행하지 못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
예산 편성 단계별로 살펴볼 때 예산의 기획편성단계에서는 다음 해 세출예산의 과다 편성, 집행 단계에서는 세출예산의 계획 수립이 구체화 되지 않은 데 따른 사전행정절차 지연에 따른 불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연구원은 앞서 언급한 요인으로 인한 불용액 감소를 위해 크게 3가지의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내부요인에 대한 개선 방안으로서는 무리한 예산확보 관행이나 관행적 예산 편성을 지양하고 예산부서의 불용액 관리 기능 강화를 주문했다.
전년 대비 무조건 예산을 확대 편성해야 한다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외부요인에 대한 개선요구 사항으로 불용률이 높은 특별회계의 사업 범위 재점검, 실질적 일몰 여부 검토 필요 등을 강조했다.
더불어 불용액을 유형화해서 예산 절감이나 적극 행정 등에 따른 좋은 불용액과 관리 소홀 등으로 인한 나쁜 불용액을 구분해 관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또 공모사업의 공고 시기를 앞당기는 등 지자체별 보조금 지원 규모를 달리하는 개선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기획・편성 단계에서 실질적인 성과계획서 작성을 통해 이전 연도의 사업분석 결과를 다음 해의 사업계획에 반영하는 안을 제시했다.
또 예산 집행・성과 단계에서 연중 모니터링의 의무화에 따른 사업 추진 즉시 반영 방안과 사업 종료 후 성과평가 결과 또한 다음 해의 예산에 반영하는 안을 권고하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이미 실시하고 있는 주요 재정사업 성과평가제도를 적극적이고 실질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강조했다.
물론 불용예산에 따른 문제 제기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 문제가 오랜 세월 꾸준히 지속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해마다 국민 세금이 누수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면 누가 흔쾌히 납세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
중앙 부처든 지자체든 소중한 혈세가 단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이질 않도록 시급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예산 편성 업무 담당 일선 공무원들의 획기적인 사고 전환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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