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가 지난 4일 향년 9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보수 진영 원로로 꼽히는 김동길 명예교수는 ‘이게 뭡니까’라는 신랄한 풍자를 통해 왜곡된 사회현상과 정치를 꼬집으며 대중들의 신망을 얻었다.
고인은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지만 이후 소위 3김 체제 비판에 앞장섰다.
이어 민주화 이후 최근까지는 자유민주주의와 반공, 반북 등 보수 담론 설파에 평생을 바쳤다.
김 명예교수는 1928년 평안남도 맹산군에서 태어났다.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한 그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에반스빌대 역사학 석사, 보스턴대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모교인 연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귀국 후 즐겨 쓰던 사회풍자 칼럼으로 주목받던 그는 유신 이후 민주화 인사 함석헌이 발행하던 '씨알의 소리'에 박정희 대통령 비판 글을 게재한다.
이로 인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배후로 몰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집행 정지로 풀려났으나 이 일로 모교인 연세대에서는 해직됐다.
김 명예교수의 연세대 복직은 1984년에야 정상적으로 이뤄졌다.
그동안은 해직과 복직이 거듭됐다,
지난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복직했던 그는 신군부가 1980년 꾸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으로 또다시 해직되는 등 파란을 겪었다.
이후 김영삼·김대중계 등이 모여 창당한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올라선 1985년, 김영삼·김대중·김종필 씨 등 3김에게 정계 은퇴를 요구하는 이른바 '낚시론' 칼럼을 신문에 게재했다가 야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1991년 4월 강의 도중 강경대 구타치사 사건에 대해 '입학한 지 두 달 된 신입생이 배후 조종한 선배들에게 이끌려 시위 도중 도망가다가 맞아 죽은 것뿐'이라는 취지로 폄하 발언했다가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이며 반발하자 강단을 떠났다.
김 명예교수는 3김 정치 청산 등을 주장하며 창당을 준비하던 1992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제3 진영을 자처하며 창당한 통일국민당에 합류한다. 같은 해 제14대 총선에서 서울 강남구갑 선거구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러나 14대 대선에서 패배한 정 회장의 정계 은퇴로 통일국민당 대표를 이어받은 그는 당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정치적 동력에 타격을 받는다.
이후 신민당 창당, 자유민주연합 합류 등 정치적 도전에 나섰지만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 1996년 제15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탈락에 불복해 탈당과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 명예교수는 이듬해인 1997년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사회가 좌 편향되고 있다’라며 비판했고 이때부터 자유민주주의와 반북, 반공 등 담론을 적극적으로 설파하며 보수 논객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민주화 인사에서 일약 보수 진영 원로로 자리매김했다.
은퇴 후 방송 출연과 칼럼 기고에 열중하던 그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자 자신의 홈페이지에 ‘국민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 자살하거나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 할 것’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19년 개설한 유튜브 채널 '김동길 TV'를 지난해까지 운영했던 그는 연초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등 말년까지 정치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민족명예원로회의 공동의장, 사단법인 태평양위원회 이사장을 역임했던 그는 ‘석양에 홀로 서서’, ‘링컨의 일생’ 등 생전에 1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시신은 연세대 의과대학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던 고인은 그의 사후까지 미리 준비해 놓았다.
번거롭지 않게 추모식이나 장례식을 치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빈소도 김옥길 기념관에 마련돼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
서대문구 자택도 누나인 故(고) 김옥길 여사가 총장을 지낸 이화여대에 기부하도록 유언을 남겼다.
육신까지 의대생들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자 흔적을 남기지 않기로 했던 그는 이 세상에 온 처음 그대로 오롯이 맑은 영혼만 저 하늘의 별이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참으로 위대한 일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누구보다 나비넥타이와 콧수염이 멋졌던 그를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아무쪼록 생전 그가 그토록 찬양했던 하느님 품 안에서 영원토록 행복하시길 간절히 기도할 따름이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