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 자유여행이 가능해지면서 항공권과 호텔 등 일본 관련 여행상품의 예약이 폭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지난달 22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하루 5만 명으로 정했던 입국자 상한 기준을 없애고, 외국인 무비자 입국도 허용한다는 발표 뒤 나타난 변화다.
이에 따라 지난 11일부터 본격 시행된 일본 무비자 입국에 발맞춰 항공사들도 서둘러 일본 노선 증편에 나서고 있다.
여행사, 홈쇼핑, 이커머스 등에서도 일본여행상품 판매에 앞다퉈 열을 올리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티몬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오사카·도쿄·후쿠오카·삿포로 등 일본 주요 도시의 항공권 매출은 전월 같은 기간보다 7천196% 폭증했다.
가히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19년 7월 2일, 일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한국대법원 배상 판결 등을 문제 삼은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 규제 강화로 국내 일본상품 불매 운동이 촉발됐다.
당시 일본 경제산업성은 시행령 고시에 이어 이틀 뒤인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수출 허가를 포괄 신청 대상에서 개별 심사 대상으로 바꾸어 수출심사를 엄격히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반일감정과 더불어 계속 확산하면서 당시 한 달 새 일본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위메프 투어에 따르면 불매 운동이 시작된 이후 일본행 항공권 취소 비중이 5배까지 급증했다.
전체 국제선 항공권 취소 건수에서 일본행 항공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직전 6월 4주 차 9%에 불과했다.
하지만, 불매 운동이 시작된 7월 1주 차 15%로 올라섰고 이어 2주 차 36%, 3주 차엔 44%로 치솟았다. 국제선 항공권 취소건 10건 중 4건 이상은 일본행이 된 셈이다.
국제선 항공권 예약 가운데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도 작아졌다.
일본행 항공권 예약 건수는 직전 6월 4주 차에 전체 예약 건수 가운데 25%에 달했지만 7월 3주 차에는 10%까지 떨어졌다.
정치적 대응도 잇따랐다. 문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를 일본에 통보하며 맞섰다.
물론 코로나 확산에 따른 해외여행 규제로 그동안 억눌려왔던 욕구가 터진 데다 엔저 영향과 맞물리기까지 한 탓이라곤 하지만 불과 3년 남짓 지나 이처럼 상황이 뒤바뀐 게 신기할 정도다.
일본 제품 따윈 영원히 쳐다보지도 않을 것처럼 했던 국민인데 그새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본여행에 앞을 다투고 있다는 소식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때맞춰 최근 동해상에서 실시된 한미일 3국 연합군사훈련을 두고 정치권의 대일 공방이 연일 뜨거워지고 있다.
정치권을 넘어서 안보·군사 전문가는 물론 보수·진보 지지자도 가세해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면서 이념논쟁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이 '친일 국방'이라며 비판 수위를 높이자 국민의힘이 '친북'으로 맞서며 양보 없는 진흙탕 싸움에 돌입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11일 안보 전문가와 당 지도부 등이 참석한 긴급안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가 독도 근해로 일본 자위대를 불러들여 합동 실전 군사훈련을 연이어 강행하는 건 좌시할 수 없는 국방 참사·안보 자해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민국이 일본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인정하는 시그널을 줄 수도 있고, 한미일 군사동맹으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반도에 다시 일본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친북' '반미' 색깔론으로 반격했다. 특히 이 대표가 지난 10일 "일본군의 한반도 진주, 욱일기가 한반도에 다시 걸리는 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라고 한 발언을 두고 설전을 벌였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미·일 합동 훈련은 2017년 3국 국방부 장관합의에 의한 것"이라며 "민주당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일 선동이라는 정치적 마약에 의지했다"라고 반발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북한 김정은의 핵미사일 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미국·일본과 하지, 중국·러시아와 하냐"라고 직격 했다.
이어 "김정은에겐 말 한마디 못 하면서 '자유 연대'의 군사훈련을 트집 잡는 저의는 뭘까"라고 꼬집었다.
이처럼 여야 대립이 친일·친북·반미 등의 노골적인 이념논쟁으로 번지며 정치권 안팎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가운데 야당의 친일 색깔론은 대단히 부적절한 정치 프레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홍규덕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일요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가운데 한미일이 온 힘을 합해 이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낡은 정치 프레임으로 한국과 일본, 미국을 이간하는 발언은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상상을 초월하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한미일이 하나가 되어 위협에 대처하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이라며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보면서도 낡은 반일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 역시 "친일 프레임은 한국의 국가안보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재의 한국을 가능하게 만든 국제질서가 자유민주주의적인 것"이라며 "따라서 앞으로도 이는 유지돼야 하는 중요한 근간"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북한을 견제하는 데 있어 일본과의 군사적 연합이 꼭 필요한지 고려해볼 여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우정무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에 대응하는 데 있어 일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남한이 북한에 월등히 앞서는 군사전력을 가지고 있고, 북한의 사실상 유일한 비대칭 전력인 핵 역시 한미동맹에서 제공하는 핵우산으로 인해 정말 유효한 전력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이어 "즉,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한 북한 대응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대한민국은 임진왜란과 식민 지배 등 역사적으로 얽힌 탓에 좀처럼 반일, 반한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관계다.
이는 이 시기를 겪지 않은 후대에까지 영향을 끼쳐 영원할지도 모를 앙숙으로 대물림되고 있다.
정치를 떠나 축구경기 등 모든 스포츠 대회에서까지도 서로 국민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가혹했던 식민 지배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죄가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군이 한국을 다시 무력 침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북한의 핵 공격 위협과 중국·러시아 등 전체주의 국가의 발호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일본과의 실질적 협력 강화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최근의 한·미·일 동해 연합 훈련 역시 이런 동북아 안보 수요에 대응한 기본적인 군사 협력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여야가 정쟁에만 기를 쓰고 국론이 분열됐을 때 누가 가장 좋아할 것인가를 염두에 둔다면, 현재 불거지고 있는 프레임 논쟁이야말로 더없이 단순해질 문제다.
정치인들은 늘 입버릇처럼 ‘안보에는 여야 구분이 없다’라고 이구동성으로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한·미·일 동해 연합 훈련을 둘러싼 프레임 정쟁은, 정작 자신들의 당리당략에 따라 주장을 달리하기만 할 뿐 모두 헛구호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란 말이 있다. 대인 관계에서 ‘너무 가깝게도 멀게도 말라’는 뜻이다.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과 달리 정작 우리 국민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불매 운동을 통해 적절히 일본을 나무라고, 또 너무 멀어진 관계를 우려해 다시금 일본 방문도 한다.
국민 모두는 현명하게 이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고 담담하게 지켜볼 뿐인데 정치인들만 권력욕에 사로잡혀 허구한 날 망발을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제발 정신 좀 차리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진정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우선으로 삼길 바라마지 않는다.
더불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제정신인 정치인이 단 한 사람이라도 우리 앞에 나서주길 고대해 본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