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한지 열흘 남짓 지났다.
국민 대부분이 여전히 충격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엔 느닷없이 풍산개 논란이 불거졌다.
논란의 시발은 대충 이렇다.
지난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이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선물 받아 키우던 풍산개인 '곰이'와 '송강'을 정부에 반환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실제로 문재인 전 대통령 측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지난 8일 정부에 인도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이 반환 의사를 밝힌 지 하루만이다.
문 전 대통령 측과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양측은 8일 오후 대구 경북대병원 동물병원에서 만나 곰이와 송강을 인수인계했다.
병원에서 만난 건 풍산개 2마리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현재 곰이와 송강은 병원에 입원한 상황이다.
대통령기록관은 "풍산개를 맡아 관리할 기관, 관리 방식 등을 검토·협의 중"이라며 "관리기관이 결정되면 풍산개를 이동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복수의 언론매체 보도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 측은 풍산개 반환에 대해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 5월 9일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과 맺은 협약의 후속 조치인 시행령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실은 문 전 대통령 측이 시행령 개정 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자체 판단에 따라 풍산개를 반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 3차 남북정상회담 뒤 김정은에게서 곰이와 송강을 받았다. 퇴임 후에는 이 두 마리에 곰이가 낳은 새끼 '다운이'까지 경남 양산 사저로 데려가 키웠다.
대통령기록관에 따르면 대통령기록물법상 국가 원수 자격으로 받은 풍산개 역시 대통령기록물이므로, 대통령이 퇴임하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동식물을 관리·사육할 시설을 갖추지 않았던 데다 동물복지까지 고려해 5월 9일 문 전 대통령에게 풍산개를 맡기겠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는 '사육 및 관리에 필요한 물품 및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급할 수 있다'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기록관은 지난 6월부터 동식물일 경우 키우던 전 대통령에게 관리 비용을 지원하고 맡길 수 있다는 내용의 시행령 마련을 추진했으나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이에 대해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행안부는 6월 17일 시행령 개정을 입법 예고했으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실의 이의 제기로 국무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라고 했다.
또 "행안부는 일부 자구를 수정해 다시 입법 예고하겠다고 했으나 지금까지 진척이 없다"라며 "역시 대통령실의 반대가 원인인 듯하다"라고 부연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쿨하게 처리하면 그만"이라며 "대통령기록물의 관리 위탁은 쌍방의 선의에 기초하므로 정부 측에서 싫거나 더 나은 관리방안을 마련할 경우 언제든지 위탁을 그만두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은 언론 공지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풍산개를 맡아 키우기 위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실이 반대해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이와 함께 “해당 시행령은 대통령기록관 소관으로 행안부, 법제처 등 관련 부처가 협의 중”이라며 “시행령 개정이 완전히 무산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시행령 입안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풍산개를 대통령기록관에 반환한 것은 전적으로 문 전 대통령 측 판단일 뿐, 대통령실과는 관련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번 일과 관련해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은 문 전 대통령과 대통령기록관이 맺은 협약을 '해괴한 협약서'라고 부르며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권 의원은 페이스북에 "협약서를 토대로 사료비 등 250여만 원의 예산지원 계획이 수립됐다"라며 "퇴임 후 본인이 키우는 강아지 사육비까지 혈세로 충당해야겠나"라고 적었다.
그러자 이번엔 전임 정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문 대통령에게 '키우던 분이 데려가시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해 평산으로 데려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국내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진 가운데, 외신도 이 소식을 빠르게 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CNN은 ‘북한의 평화개(peace dogs)가 한국에서 정치적 논쟁을 야기했다’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이번 사안을 자세히 전했다.
CNN은 풍산개 2마리에 대해 “2018년 평화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에게 선물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에도 문 전 대통령과 함께 살았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개는 역사적으로 남북관계를 녹이는 상징이었다. 2000년 김정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풍산개 2마리를 선물했고, 당시 한국은 평화와 통일이라는 이름의 진돗개 두 마리로 화답했다”라고 덧붙였다.
또 이번 사안과 관련해 윤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 측의 이견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CNN은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대통령실은 문제를 쿨하게 처리하려는 선의도 없는 듯하다”라는 문 전 대통령 비서실의 보도자료를 인용하기도 했다.
영국 BBC는 “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결정은 개를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 현 정부와 전 정부 간의 이견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또 가디언은 “김정은에게 받은 개들이 한국에 정치적 공방을 불러일으켰다”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영국 인디펜던트 역시 ‘개 두 마리의 양육을 둘러싼 전·현직 지도자들 사이에 기괴한 논쟁이 벌어졌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사안을 소개했다.
시시비비를 떠나 참으로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이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 참으로 부끄럽다.
그동안 문 전 대통령은 외신과의 인터뷰 때도 풍산개를 동원해 평화홍보를 하는 등 수시로 풍산개와의 반려를 강조해왔다.
그런 그에게 느끼는 1천500만 반려견 인구의 배신감은 여느 국민과는 또 다를 것이다.
이와 관련 반려인들은 참으로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곰이'와 '송강'이를 입양해 반려견으로 키우던 것이 아니고 위탁을 받아 관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또 풍산개 2마리의 양육비가 월 250만 원씩이나 된다는 것과 법적으로 동물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태도 등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지어 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단체의 대표도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우희종 촛불승리전환행동 공동상임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 측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촛불행동은 ‘조국백서’를 집필한 교수와 야당의 비례위성정당 대표를 지낸 인사가 주도하는 시민단체다. 지난 8월부터 매주 광화문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요구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여당뿐만 아니라 진보 단체 내부에서도 문 전 대통령 측의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 것이다.
우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 전 대통령의 파양 소식. 특별한 사유가 아닌 비용 문제라고 하니 솔직히 퇴임 당시 보여준 모습과 함께 황당하다”라며 “들여다보면 문제는 법적으로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것에 있다”라고 썼다.
그는 이어 “문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은 현실의 법과 규정을 들지만, 생명체 관점에서 보면 짜증 나는 논리이자, 현 정부와의 차이를 못 느끼게 하는 접근이다. 아기라는 생명체를 놓고 생긴 갈등에 접근한 솔로몬은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정서에 근거해 판결했다. 그 시절보다도 못하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논란을 ‘멍멍’이라는 개소리로 따끔하게 비판한 이도 있다.
국민 대다수도 공감할만한 촌철살인의 지적이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일반 국민에게 분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듯하다.
월 250만 원의 지원 없이도 '곰이'와 '송강'이를 가족처럼 사랑하고 아끼며 반납하지 않고 키울 반려인들이 숱하게 많을 것이다.
장기간의 코로나 규제, 금리 인상과 경제불황, 그리고 이태원 참사 등을 겪으며 국민의 삶은 지치고 무력감에 빠져 있다.
이처럼 엄중한 시기에 이 같은 논란으로 국격을 손상하고 국민을 피곤하게 해서야 될 일인가 싶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전날 SNS에 “이젠 개싸움까지 시작했다”라며 “풍산개는 죄가 없다. 개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며 사룟값이 비싸면 얼마나 지출되겠는가”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겨우 개 사료 비용 등 관리비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창피를 당해야만 했었는지 묻고 싶다.
과연 진정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해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발 이제 지금부터라도 개소리들 그만하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하다.
<</span>허언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