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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
  • 임영희 편집국장
  • 등록 2024-03-28 13: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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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 해나 주얼 지음



문제는 요즘 젊은것들이 아니라 바로 가짜 세대론이다!
차별, 혐오, 불평등, 억압으로 점철된 꼰대 문화와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에 맞선 ‘빌어먹을 눈송이들’의 도전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MZ 세대, 알파 세대…
우리 시대 청년을 부르는 다양한 명칭들
그런데 그들은 ‘눈송이’라 불리는 청년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


제22대 총선이 코앞이다. 선거 시즌이 되면 부동층의 표심을 잡거나 지지층의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공약과 비전이 봇물 터지듯 터진다. 특히 기성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동층 비율이 높은 청년층을 겨냥한 의제들이 전례 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청년들은 입맛대로 소환된다. ‘노인 경로우대 무임승차 폐지’, ‘여성 신규 공무원 병역 의무화’ 같은 세대 간 · 세대 내 갈등을 부추기는 공약에서부터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같은 청년 비하 슬로건까지 그 스펙트럼도 매우 넓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눈에 띈다. 동일한 대상이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세대로 규정되거나 주체에 따라 세대를 나누는 기준과 관점이 매우 상이하다는 점이다. 88만 원 세대, N포 세대, 2030세대, MZ 세대, 알파 세대, 더 나아가 이대남, 이대녀까지. 도대체 우리 시대의 청년은 어떤 이들인 걸까? 그들을 구분 짓고 규정하는 기준은 타당한 것일까?
『워싱턴 포스트』의 비디오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해나 주얼은 눈송이 세대(snowflake)라 불리는 영미권 청년들을 분석하면서 이런 세대론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강인하고 참을성 많은 기성세대와 달리 나약하고 예민하고 불평 많은 철부지 세대로 규정되는 눈송이 세대는 때에 따라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한국의 청년들과 너무도 닮아 있다. 특히 한국의 20~30대 청년을 한 세대로 묶고 그 명칭에 부정적인 의미를 담는 한국의 풍토는 눈송이를 멸칭으로 사용하는 서구 문화와 상당히 유사하다. 눈송이란 말의 어원을 찾고, 그 용어에 숨은 기득권의 문화와 정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해나 주얼의 시도는 우리의 가짜 세대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힘 있는 자들이 낙인찍는 주홍 글씨, 눈송이
대안 우파의 밀실에서 대중의 의식 속으로
대학, 표현의 자유, ‘철회 문화’, 젠더에 관한 날조된 공포


영국과 미국의 청년들은 어쩌다 눈송이로 불리게 된 걸까? 저자 해나 주얼은 눈송이라는 말의 기원을 찾는 것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하얗고 순수하고 아름다운 결정체인 눈송이가 쉬 바스러지고 뾰족뾰족 불평만 많은 한심한 존재로 전락하게 된 것은 백인우월주의와 반페미니즘을 표방하는 대안 우파 덕분이다. 이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영국의 브렉시트 탈퇴가 결정된 2016년 이후 인터넷 플랫폼, 언론, 대학 강연, 대중 담론 등을 삽시간 장악한다. 『콜린스 영어사전』이나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된 눈송이란 단어는 ‘나약하고 예민하고 쉽게 불쾌해하고 자신이 특별한 대우나 배려를 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는데, 구체적 현실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철회’를 외치는 대학생과 유색인, 여성, 그리고 젠더 구분에 혼란을 야기하는 성소수자 등을 지칭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했다. 극우의 인터넷 밀실에서 나온 혐오 표현이 암암리에 대중의 의식 속에 깊이 파고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눈송이란 말이 단지 극우 세력의 전유물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나 주얼은 눈송이란 멸칭이 대중화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세력으로 진보 엘리트주의자, 기업 관리자 및 경영인, 트랜스 배제적인 급진 페미니스트 또한 빼놓지 않는다. 꽤나 리버럴하고 진보적인 체하지만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에 위협이 되는 발언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 청년 노동자들이 주어진 노동 조건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한다고 비난하는 이들, 이분법적인 젠더 구분에 혼란을 주는 트랜스인과 논바이너리인을 혐오하는 이들 모두 너무도 쉽게 눈송이란 낙인을 찍어버린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고 있고 저마다 다른 위치에 있는 듯하지만, 이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불편한 존재에게 눈송이란 주홍 글씨를 짊어지게 한다. 그렇다면 억울한 눈송이는 ‘나는 눈송이가 아니다’라고 외치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상대에게 똑같이 눈송이란 낙인을 찍으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해나 주얼은 이제 이런 진흙탕 싸움을 끝낼 때가 됐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차별, 혐오, 불평등, 억압으로 점철된 꼰대 문화와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멸칭을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빌어먹을 눈송이들’의 도전


사실 이 책에는 한국어 ‘꼰대’에 정확히 부합하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나이든 사람을 지칭하는 ‘boomer’나 ‘dickhead’, ‘arsehole’처럼 재수 없고 되먹지 못한 인간을 이르는 비속어가 눈송이 혐오자들을 이를 때 사용되는데, 이를 꼰대로 옮겼다. 요즘 젊은것들을 조롱하고,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강인함을 들어내는 꼰대는 이제 특정 연령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불편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나약하고 예민하고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하는 꼰대 문화 속에는 젊은이들의 기세와 연대를 꺾고, 그들의 급진적인 발상을 짓밟기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 경험이 부족해서, 고생을 안 해봐서’라는 말 속에는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고, 문제의 책임을 묻기 위해 연대하는 일련의 변혁을 위한 행동을 가로막는 힘이 작동하고 있다.
해나 주얼은 이렇게 말한다. “‘하! 거 봐라, 당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라고 지적한다면 이렇게 답할 수 있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종주의자, 등신, 편견 덩어리, 동성애 혐오자, 옅어지는 제 존재감을 되돌려 보려고 헛되이 발버둥치는 옹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잔인한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고 싶다고.” 멸칭을 당당히 자기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눈송이들의 도전은 퀴어를 퀴어로 당당히 받아들인 LGBTQ+운동을 연상시킨다. 꼰대 문화와 이를 교묘히 이용하는 정치 세력에 맞선 눈송이의 도전은 실로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도대체 왜 예민하고 화내고 불평하면 안 되는가?”

입맛대로 청년을 미화하고 악마화하는 가짜 세대론
쪼개고 갈라치는 청년 정치 담론은 이제 멈춰야 한다!


눈송이로 폄하되는 서구의 청년들과 달리 한국의 청년층은 무조건 악마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2030세대를 일컫는 MZ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점점 짙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눈송이와 완전히 등치할 수 있는 용어는 아직 없다. 오히려 청년을 때론 미화하고 때론 악마화하는 가짜 세대론의 문제가 세대 간 갈등과 세대 내 갈등 모두를 심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2023년 12월 국가보훈처 산하 재단법인 대한국인이 실시한 설문조사(엠브레인퍼블릭에 위탁, 성인 남녀 1천 명 대상)에 따르면, ‘사회 갈등이 심각해질 것이다’라는 인식이 2020년 대비 2023년에 크게 증가했고,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회 갈등에서 세대 갈등이 차지한 순위 역시 2020년 5위에서 2023년 2위로 훌쩍 상승했다. 또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 3952명(청년층 10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조사에서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층에서 세대 내 갈등을, 특히 젠더 갈등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몇 해 전 있었던 트랜스젠더 부사관에 대한 육군의 강제 전역 조치나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대 입학을 거부한 일부 페미니스트 집단의 시위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이 이제 패닉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똑똑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빈부, 이념, 지역,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얼마 지나지 않아 세대 갈등에 제 자리를 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중장년층이나 노년층과 대조되는 청년, 남성과 여성으로 양분되는 청년은 쪼개고 갈라치는 분열 정치의 산물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은 어떤 이들이고, 그런 세대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를 묻지 않는 세대론은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거짓에 불과하다. 어쩌면 해나 주얼의 이 책은 가짜 세대론의 문제를 냉철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맞게 될 우리 시대 청년들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멸칭으로 불릴 것인가, 아님 우리의 이름을 되찾을 것인가. 도발적이면서도 유쾌한 눈송이들의 도전을 통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국회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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