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는 왜 발생하는가?
아도르노 vs 아렌트
아렌트가 말한 '철저한 무사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분명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히틀러에게서 받은 명령을 집행할 때, 아이히만은 자신의 서명이 그 서명과 관련된 유대인들에게 어떤 효과를 미칠지 생각했어야만 했다. 구체적으로 말해 자신이 집행한 상부의 명령으로 아우슈비츠에 갇힌 유대인들의 불안감을, 그리고 수용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에 의해 가스실로 걸어가는 유대인들의 공포를 사유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렌트의 유죄 평결을 아이히만이 듣고서 자신의 죄를 인정했을 리 만무하다. "그는 말과 타자의 현존을 가로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범죄를 숙고하면서 아렌트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도구적 사유와 달리 타자를 고려하는 인문학적 사유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이제 진정한 사유란 단순한 생각함이 아니라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사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천부적인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수행해야만 하는 의무라고 할 수있는 것이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때, 언제든지 우리는 누구나 제2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렌트는 우리에게 악은 너무도 평범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던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중대한 악이 우리 주변에서 우리 곁의 친근한 이들에게서 그리 어렵지 않게 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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