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규 교수

문학 속의 벼루는 銘･詩･歌･行･詞･賦･曲･贊･傳･頌･狀･跋 등과 같은 다양한 한문 문체를 통해 표현되어, 硯銘, 硯詩, 硯詞, 硯曲, 硯賦, 硯傳, 硯贊, 硯頌, 硯狀, 硯跋 등과 같은 다양한 장르의 문학작품을 남겼다. 

이런 벼루에 관한 시문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마디로 벼루의 고결한 덕성에 대한 칭송과 이를 통한 문인들의 도덕심과 수양심을 반영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런 큰 역할은 앞에서 언급한 연명이라는 문체가 주도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분량의 연시는 벼루의 덕성에 대한 찬미는 물론 벼루에 대한 문인들의 정감을 미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였으며, 비교적 큰 편폭의 연부와 연전은 벼루를 통해 세상에 대한 작자의 풍자와 철학을 반영하였다. 

특히 연전은 史傳散文과 소설의 중간에 해당하는 특이한 문체인 가전체 문학에 해당하는데, 그 문학적인 가치가 매우 높다. 편폭의 제한으로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연시 몇 작품들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

단주(단계연의 산지를 말함)의 석공은 정교함이 마치 신과 같아, 하늘을 밟고 칼을 갈아 자주색 구름을 가르네. 돌을 고르고 조각하니 연지에 물이 가득 차고, 萇弘(장홍, 주나라의 대부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비유함.)의 차가운 피 흔적(단계연의 무늬인 ‘靑花’를 말함)이 어둡게 흩어져있네. 휘장 쳐진 따뜻한 낮에 먹의 무늬는 봄날 같고, 가볍게 일어나는 기포는 먹 향기에 향기롭다. 마르면서 세윤하고 몸체가 얇으면서 무거우니 바닥에 평온하게 자리 잡고, 몇 촌의 작은 몸이 만들어낸 먹물은 가을의 陽光과 같아 어두운 곳이 없네. 붓을 묻혀 먹물을 찍으면 붓을 보호하여 아주 작은 맑은 소리가 나는데, 孔子硯(후대인들이 공자의 출생지에서 만든 벼루-尼山硯-로 품질이 조악함.) 큰 벼루와 어찌 비교하리오! ｢양생의 청화가 있는 자석연 노래(楊生青花紫石硯歌)｣, 唐, 李賀

우리 집의 벼루 선생에게 감사하나니, 아침저녁으로 먹을 적시며 오랜 세월을 같이 하네. 문장을 제공하기 위해 知己를 만나고 해주고, 중요한 정책과 공명을 추구하는 진정한 젊은이로세. 맑은 물로 씻어 먼지를 벗겨버리고, 빛나는 비단으로 옷을 입히니 푸르름이 규룡(뿔 없는 용)같도다. 아이를 불러 풍성한 음식을 차리는 일을 면제시켜며, 정신을 힘들게 하지 않고 대신 너에게 보답하노라.-｢제야에 벼루를 씻으며(除夜洗硯)｣, 宋, 王邁

한국:

십 년 글방 공부를 너와 벗 삼았으니, 단아한 거함(단계연을 비유함) 그 값어치가 백금보다 중하네. 먹 이빨에 자주 갈려 본 모습을 잃었지만, 몇 번이나 붓을 적셔 옛 글을 배웠던가! 이슬 떨어뜨려 문지를 땐 자던 새도 놀랐고, 얼음 깨어 벼루를 씻을 땐 숨은 고기 달아났지. 네 덕분에 평생 학업을 성취하는 날, 그 은공을 다 쓴다면 수레에 가득 실으리.- ｢벼루(硯)｣, 원천석(元天錫)

본래 다정한 물건인데, 어찌 마음을 두는 곳을 택하지 않으리! 맑고 탁한 곳을 응당 알거늘, 더러움에 가까이 하여 침륜하지 말지라.- ｢포은의 자석연 벼루에 운을 띄우며(和圃隱紫硯韻)｣, 박익(朴翊),

네게 묻나니 어느 산의 물건이기에, 내 마음을 자줏빛으로 만드는가? 갈면 형태는 자연 변하겠지만, 뜻을 잃게 되길 부끄러워하노라.-포은(圃隱) 정몽주의 원시 

물을 이고 문방에 누우니, 열사의 마음도 흐르도다. 천추토록 자줏빛 기운을 따랐는데, 뜻을 먼저 잃게 될까 두렵도다.- 목은(牧隱) 이색의 차운시

맨 위 원천석의 연시는 벼루의 은덕과 공,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해 칭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벼루와 함께 평생 글공부 하던 선비문인의 벼루에 대한 정과 사랑, 그리고 그 은공에 대한 감사의 심정이 잘 드러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앞에서도 많아 보았던 문인들의 벼루에 대한 보편적인 심정이기도 하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4년의 기록에는 강원도 진사 한용명(韓用明) 등이 상소하길, “고려(高麗) 진사(進士) 원천석(元天錫)은 학문이 정심(精深)하고 도덕이 순수했는데, 좋지 못한 때를 만난 탓으로 치악산(雉嶽山)에 은거해 있으면서도 전혀 답답해하는 마음을 갖지 아니하고 다시는 섬기지 않을 뜻을 굳혔습니다.”라고 하였고, 또 “원천석은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거하였는데, 이색(李穡) 등 여러 사람과 평소 친하였다. 

우리 태종께서 일찍이 그를 따라 학업을 닦으셨는데, 즉위하고 나서 여러 차례 불렀지만 나아오지 않았다. 이에 태종께서 직접 그의 초막에까지 왕림하셨는데도 천석이 도피하고 만나려 하지 않자, 태종께서 옛적의 식모를 불러 상품을 하사하고 천석의 아들을 관직에 임명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원천석은 그 연시에서도 보듯 매우 올곧고 지조가 있는 문인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위 박익이 지은 <</span>포은의 자석연 벼루에 운을 띄우며(和圃隱紫硯韻)> 연시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은이 지은 원시에 대해 차운을 한 화답시인데, 그의 문집 『송은집(松隱集)』에는 포은의 원시와 또 이에 먼저 차운한 목은 이색의 화답시도 기록되어 있다. 

위 포은의 원시를 보면 자석연(紫石硯)에 대한 자신의 심사를 노래하였는데, 벼루와 함께 영원히 자신의 뜻을 잃지 않으리라는 심정을 읊고 있는 듯하다. 여기서의 자줏빛은 자주색 벼루와 임금을 뜻하는 자주색의 의미가 서로 어우르진 쌍관어(雙關語)라고 볼 수 있다. 고려말기 임금을 따르려고 하는 정몽주의 충성심이 잘 나타나있다. 

그의 이 작품에 대한 이색의 차운시도 살펴보면, 정몽주가 행여나 자신의 뜻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을 읊은 내용인데, 고려 말기 복잡한 정치상황을 엿보게 하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자줏빛 기운을 따름”은 바로 임금에 대한 변하지 않는 충성심을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박익의 연시를 보아도 그 뜻이 계속 이어짐을 알 수 있는데, 정몽주의 마음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자신 본래의 맑음(내지는 충성심)을 계속 유지할 것을 당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벼루라는 물건을 사이에 두고 고려말기의 세 위인들이 자신들의 청렴하고 결백한 뜻과 의지를 밝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벼루는 예로부터 문인들에게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었기에 자신의 청고한 뜻을 벼루를 통해 읊고 있는 것이다. 

고려말기 나라가 망하려하자 벼슬을 버리고 태조가 다섯 차례나 그를 불렀지만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끝내 응하지 않았다는 박익의 절개가 이 연시에 오롯이 반영되어 있다. 그가 고향으로 내려가며 포은에게 보낸 다음의 시는 그의 이런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지난날의 일들을 듣고 보니, 영화롭던 이름이 세간의 욕이 되고 있구려. 마음 속 깊은 생각을 말할 것 없이, 일찍이 산으로 돌아감만 같지 못하리.

정몽주가 좀 더 일찍 박익의 충고를 들었더라면 선죽교에서의 참극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유원(李裕元)이 지은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3권 “화동옥삼편(華東玉糝編)”에 보면, “고려 말의 팔은(八隱)”이란 조에 아래와 같은 기록이 있다.

“송은(松隱) 박천익(朴天翊),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 성은(成隱) 김대윤(金大潤), 동은(桐隱) 이재홍(李在弘), 휴은(休隱) 이석주(李錫周), 만은(晩隱) 홍재(洪載), 이상의 여덟 사람들을 ‘팔은(八隱)’이라고 한다.” 

3)유가(儒家)의 보장(寶藏)으로서의 벼루

조선시대 연시에는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꼽히는 홍문관의 수장 대제학이 바뀔 때마다 주문연[主文硯, 이는 대제학이 관할하는 큰 벼루를 일컫는 말인데, 다른 말로 ‘문형연(文衡硯)’ 내지 ‘전심연(傳心硯)’이라고도 불렀다.] 벼루와 함께 자신의 감회를 전하며 읊는 이른바 ‘전연시(傳硯詩)’가 있었는데 이 또한 조선시대 연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였다. 

이들 연시들은 조선문학 사대가(이정귀･이식･장유･신흠)에 속하는 이정귀･이식･장유 등이 지은 작품들인데, 모두 대제학을 지내며 ‘문형연’을 물려주거나 물려받으면서 그 감회를 읊은 작품들이다. 

‘주문연’의 유래와 역사를 살펴보면, 장유의 『계곡집(谿谷集)』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어숙권(魚叔權, 조선 전기 중종 때의 학자)의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말하길, 옥당(玉堂: 조선시대 홍문관을 말함.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三司로 칭함)에 오래전부터 큰 돌벼루가 있었는데, 항상 장서각(藏書閣)에 보관해 두고 있다가, 대제학이 옥당에 들어와서 학사(學士)들의 과작(課作)을 점수 매길 때면 늘 그것을 꺼내다가 썼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옥당에서는 예로부터 문형이 교체되면서 벼루를 전해 줄 때면 언제나 시편(詩篇)을 주고받곤 하였으므로, 이것이 마침내는 문원(文苑)의 아름다운 고사가 되었다고 하였다. 

이들보다 300년가량 뒤의 인물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내의 「주문연(主文硯)」에 관한 기록에 의하면, 주문연은 남곤(南袞)으로부터 이행(李荇)에게 전해진 뒤 서로 전해 내려오다가 이덕형(李德馨)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잃어버렸는데, 명(明)나라 군대가 이를 얻어서 가져다가 단지를 괴는 돌로 쓰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이 보고서 도로 가져와 홍문관(弘文館)에 둠으로써 다시 전해지게 되어 이이첨(李爾瞻, 1560~1623)에 이르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이첨이 패하게 되자 다시 잃어버렸는데, 신흠(申欽, 1566∼1628)이 대제학으로 있을 적에 안동(安東)의 마간석(馬肝石)으로 다시 큰 벼루 하나를 만들어 ‘전심연(傳心硯)’이라고 하여 오늘날에 남아 전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문형연’ 벼루의 전통은 조선시대 전기 때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계속 전해져왔음을 알 수가 있으며, 실제 하나의 벼루를 후인에게 전해주던 전통은 남곤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현재 이 벼루는 우리나라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의 최대 문벌가이자 지성인에 해당하는 대제학들이 벼루를 마치 신주 모시듯 하며 정성껏 대대로 물려준 것을 보면 벼루는 실로 ‘유가(儒家)의 보장(寶藏)’이 아닐 수 없다.